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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28 20:13 수정 : 2006.02.28 20:13

사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그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강행했다. 환노위는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법안 통과를 막으려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끌어내기까지 했다. 민주노동당은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를 기필코 저지하겠다고 밝혔고, 민주노총은 즉각적인 총파업을 선언했다. 사용자 단체들도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언뜻 보면 아무도 원하지 않는 법안인 듯하나 이는 진실이 아니다. 사용자 쪽의 반발은 규제 완화 폭이 기대에 못미친다는 불만 정도인 반면, 노동계는 생사가 걸린 문제로 보고 있다.

통과된 법안의 주요 내용은 기간제(계약직) 노동자와 파견직 노동자에 관한 것이다. 현재 계약기간 1년 미만의 기간제에 대해 무조건 허용하던 것을 계약기간을 2년으로 늘리고, 2년을 넘기면 함부로 해고할 수 없게 바꿨다. 파견직의 경우 사용기간 2년은 기존과 같지만, 파견이 가능한 업무가 크게 늘어났다.

비정규직 문제는 이해 당사자간 시각 차이가 워낙 크지만, 사회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원칙은 있다. 첫째,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비정규직이 더 확산돼선 곤란하다. 둘째, 양극화를 재촉하는 비정규직 차별을 완화해야 한다. 셋째, 일정한 정도의 노동 유연성은 유지돼야 한다. 정부도 이런 취지에 동의한 바 있다. 그런데 실제 통과된 법안은 이런 원칙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확산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대부분 임시·일용직 또는 계약직(기간제)이다. 계약직이 많은 것은 사용 제한을 두지 않는 탓이다. 그래서 노동계는 물론이고 국가인권위원회조차 기간제 사용 사유 제한을 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런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용자가 마음껏 쓸 수 있는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난 꼴이 됐다.

2년이 넘으면 함부로 해고할 수 없도록 한 신설 규정(고용의제 규정)도 사실상 이미 적용되고 있는 보호장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지난해 말 발표한 의견서를 보면, 법원은 지금도 1년짜리 계약 갱신이 반복되면 시한이 없는 계약이 이뤄진 것으로 해석한다. 게다가 법원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갱신 거부도 효력이 없다고 보고 있다. ‘고용의제’는 새로운 보호장치가 아니다.

사용자 쪽에서는 사용 사유를 제한하면 노동 유연성이 깨질 것으로 우려한다. 제한을 두자는 쪽도 ‘출산·질병 등에 따른 결원 대체’ 정도만 허용하자는 건 아니다. ‘일시·임시적 고용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경우’와 같이 비교적 폭넓게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정도라면 노동 유연성은 얼마든지 보장될 수 있다.

파견직 문제도 심각하다. 파견직을 쓸 수 있는 업무가 지금까지는 ‘전문지식·기술 또는 경험이 필요한 업무’에 한정됐는데,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해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가 더해졌다. 지금도 불법파견이 성행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심히 우려된다.

물론 법안에 비정규직 차별 금지 규정이 포함되는 등 진일보한 측면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는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국회는 비정규직 법안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마땅하다. 그러지 않으면 가뜩이나 나쁜 노-정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정부와 국회가 ‘비정규직 보호 의지’는 고사하고 파국을 피하겠다는 의지만 있어도 이렇게 밀어붙일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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