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02 22:13
수정 : 2006.03.02 22:13
사설
열린우리당과 공정거래위원회가 당정협의를 열어 출자총액 제한제도(출총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포스코 등 민영화한 공기업 중 총수가 없는 4개 기업집단에 출총제를 적용 않기로 한 건 그렇다 해도, 대우건설을 비롯해 공적자금으로 살아난 여섯 개 기업을 매각할 때 여기에 출자하는 것도 예외로 봐주기로 한 건 재벌개혁 후퇴의 전형적 모습이다.
여섯 기업에 대한 출총제 예외 인정은, 재벌이 이들 기업을 살 수 있게 길을 터주겠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출총제는 적용 제외와 예외 인정 남발로 누더기가 돼 있다. 이번 조처로 출총제는 더 유명무실해지게 됐다. 물꼬가 트였으니 더 큰 예외가 나올 수도 있다.
이번 조처는 일관성 없는 정부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공정위는 그동안 신·증설 등 투자가 아닌 지배 목적의 출자총액을 제한하는 제도는 필요하다고 했다. 재벌의 소유지배 구조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도 되뇌어 왔다. 여섯개 기업을 사는 건 신·증설이 아니다. 재벌의 지배구조도 별반 변한 게 없다. 정부 스스로 원칙을 뒤엎고 출총제의 당위성에 큰 흠을 낸 꼴이다.
여섯 기업을 재벌이 가져가건 말건 공적자금만 회수하면 된다는 판단도 안이하다. 새로운 지배구조 모델을 만들 수도 있는데, 스스로 기회를 포기하는 셈이다. 꼭 오너가 있어야 한다는 낡은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지금 당장은 재벌 외에 대안이 없다면 자본시장에 여력이 생길 때까지 좀더 기다려도 된다. 여섯 개 기업은 오너가 없이도 건실하게 경영을 하고 있는데, 재벌개혁을 후퇴시키면서까지 매각을 서두르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정권 말기에 이르면 재벌에 굴복했던 과거 정권의 모습을 재연하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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