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03 21:09
수정 : 2006.03.03 21:09
사설
1995년 8월 미국 상원 윤리위원회는 보브 팩우드 의원(공화당)의 성추행 혐의를 인정해 의원직 제명을 만장 일치로 권고했다. 5선의 거물로 당시 상원 재정위원장이었던 그는 상원 전체회의에서 제명안이 가결될 것이 확실해지자 그해 9월 자진해 사퇴했다.
대한민국 국회는 어떤가. 한마디로 자정능력이 전혀 없다고 해도 지나칠 말이 아니다. 유일한 자정기관인 윤리특위는 국회 활동에 관해서만 의원 징계 심사를 할 수 있을 뿐,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처럼 명백한 범죄행위라도 국회 바깥에서 벌어진 일은 징계 대상이 아니다. 기껏해야 “국회의원 윤리실천 규범을 위반했다”고 본인에게 통보만 할 수 있는 ‘윤리심사’의 대상일 뿐이다.
더구나 윤리특위에 안건이 올라가도 여야의 제식구 감싸기로 결국에는 대부분 흐지부지되고 만다. 17대 국회 들어 대구 술자리 욕설 사건 등 모두 17건이 제소됐지만, 시한 만료로 자동 폐기됐거나 기껏해야 형식적인 ‘주의’에 그쳤다. 또 윤리특위에서 징계안을 결정해 국회의장에게 올려도 의장이 본회의에 안건을 상정조차 않기가 일쑤다. 김원기 국회의장은 지난해 이후 10건의 징계안을 상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1991년 윤리특위가 생긴 이래 실질적인 징계가 이뤄진 적이 한 번도 없다.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여야는 △외부 자문위원단 구성 △윤리위반 의원 중징계 등 윤리특위 개선안을 내놓고 있다. 17대 총선 때도 했던 약속들이다. 정치인들에게 맡겨 놓으면 또 유야무야될 게 뻔하다. 국회는 진정 개선 의지가 있다면 논의 단계부터 국민들에게 맡기라. 이와 별도로 이번 기회에 문제 의원을 임기 중에 심판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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