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08 21:03
수정 : 2006.03.08 21:03
사설
이용훈 대법원장이 전국 수석부장판사들한테 ‘기업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신중히 하라’는 요지의 당부를 했다고 한다. 얼마 전 ‘기업범죄를 엄단하겠다’는 발언에 비춰 보면, 죄질은 중하게 다루되 부당한 피해는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법원의 불구속 재판 확대 조처와 마찬가지로,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은 일단 긍정적이다.
압수수색은 수사에 필요한 부분만 최소한의 범위에서 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범죄와 관련된 일체의 문서와 물건’이란 식으로 포괄적 압수수색 관행이 뿌리깊다. 범죄 혐의와 전혀 상관없는 사적인 물건과 기록까지 투망식으로 싹쓸이해 간다. 범죄와 무관한 사생활과 재산권을 침해하는 건 엄연한 과잉 수사다. 물론 수사상 불가피한 경우도 있겠지만, 개인과 기업의 일상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면 도를 넘는 것이다.
과도한 압수수색 관행은 ‘별건 구속’ 등 수사 편의주의 탓이 크다. 분식회계 피의자를 사기 등 전혀 다른 죄목으로 구속하는 식인데, 이때 혐의와 상관없이 압수한 증거물을 활용한다. 신병을 확보하자면 불가피한 조처라지만 엄연한 편법이다. ‘위법한 증거’로 판단해 이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 일단 잡아넣고 보자는 식의 수사 관행은 이젠 바뀌어야 한다.
압수수색과 계좌추적은 주로 비리 수사에 활용된다. 마구잡이 영장 발부로 정당한 기업 활동이 피해를 봐선 안 되지만, 거꾸로 수사가 위축되는 상황이 빚어져선 더욱 안 된다. 기업범죄 수사는 상대적으로 포괄적인 증거가 필요하고 증거인멸 가능성도 높다. 애초 취지와 달리 부실수사의 방패막이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법원과 검찰이 합리적인 제도와 관행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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