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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의지 있나 |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또다시 출자총액 제한제의 힘을 빼고 있다. 당정은 14일 애초 공정거래위원회가 예고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더 완화하고 말았다. 출자총액 제한제가 적용되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자산 기준을 현행 5조원에서 6조원으로 높이고, 부채비율 100% 미만인 기업집단은 1년 더 이 제도를 유예해 주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출자총액 제한제는 지난해 17개 기업집단에 시행됐지만 올해는 대상이 10개 안팎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게다가 예외로 인정받을 수 있는 출자 범위를 대폭 늘렸다. 재벌개혁에 필요한 출자총액 제한제의 틀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과연 정부와 열린우리당에 재벌개혁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에는 증권 집단소송제 또한 크게 완화하겠다고 했다. 출자총액 제한제의 실효성을 이렇게 떨어뜨릴 것이면서 왜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려고 많은 힘을 썼던 것일까? 시행령에서 대폭 완화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워놓고 개혁을 한다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모법을 고친 것은 아닌가.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지난 2~3년 간의 경제규모 변화 등을 반영해 시행령을 바꾼다고 하지만 옹색한 변명일 뿐이다. 이런 모습은 정책, 특히 재벌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는 생각만 들게 한다. 일부에서 분석하듯 전반적 정책기조가 아예 실용주의 노선으로 방향을 튼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재벌개혁은 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목적지에 이르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정부 여당이 재벌개혁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는다면 자세를 바꿔야 한다. 출자총액 제한제의 틀을 흔드는 조처를 중단해야 한다. 재벌그룹들의 출자제한을 완화한다고 해서 경기부양과 관련된 순수한 의미의 투자를 늘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재벌개혁에 쓸모있는 다른 정책을 도입하기 전까지 이 제도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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