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사·정 대표자 4명이 지난주 <한겨레>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함께 모인 것이 참여정부 들어 첫번째 만남이었다니 놀랍다. 노동정책 부재로 신뢰를 주지 못한 정부나 교섭에 참여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민주노총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어떻게 해야 앞으로 이들이 계속 바람직한 틀 속에서 만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토론회에서 이상수 노동부 장관이 민주노총 쪽에 어떻게 하면 대화에 나설 수 있는지 묻자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나중에 <한겨레>가 조 위원장의 발언 의도를 확인하자, 민주노총은 정부가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를 해결한다면 노사정 대화 재개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전해왔다. 이 문제가 대화의 물꼬를 트는 열쇠라는 뜻이다.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가 갖는 불합리한 현상의 하나는 투쟁이 장기화할수록 내용이 절실해짐에도 사람들의 관심에서는 더욱 멀어진다는 것이다. 노조 탄압은 우리 사회에서 더는 새로운 일도 아니어서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깊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인 사회에서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지 않는 이런 세태는 마치 살인이나 유괴가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범죄가 아니어서 그 해결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노동부와 민주노총은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를 통해, 앞으로 매주 1차례씩 열 실무협의에는 현안 사업장의 노조 연맹과 노동행정 기관 책임자들도 참가하기로 하는 등의 결정을 했다. 과거에도 이런 정례 협의를 여러 차례 진행했지만 노정관계가 악화하면서 중단된 바 있다. 성과없이 귀한 세월을 허송한 어리석은 경험을 다시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노총이 노동부에 제시한 장기투쟁 사업장은 17곳이나 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 내용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 무시될 정도로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노동조합을 인정하라는 최소한의 요구를 하는 병원 노동자들에게 병원이 고용한 건장한 남성 수십 명이 일상적인 폭력을 행사해도 공권력은 수수방관한다.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수백 명은 길거리를 헤매며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유형의 투쟁을 1년 넘도록 하고 있다. 시장까지 나서서 약속한 고용보장 및 노조 탄압 중단 확약서의 내용을 회사가 이행하지 않아 노동자들이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를 하며 천막농성을 한 지 몇 달이 넘었다.
이런 비상식적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 사회 밑바탕에 노동조합에 대한 근거없는 혐오감이 짙게 깔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외환위기 이후, 기업 경쟁력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경제 우선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배타적 정서는 더욱 짙어졌다. 병원 노동조합 하나가 없어졌을 뿐인데, 또는 몇 백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됐을 뿐인데 그게 무슨 큰일이냐는 식이다. 이래서는 갈등이 풀리지도 않고 선진사회로 나아갈 수도 없다. 정부의 적극적인 행동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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