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27 21:16
수정 : 2006.03.27 21:16
사설
연쇄 살인범 유영철씨한데 가족을 셋이나 잃은 피해자가 ‘유씨를 양자로 삼고 그의 자식을 돌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생때같은 4대 독자까지 잃은 고통과 분노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건 옳지 않다”며 사형선고를 받은 유씨에게 용서의 손을 내밀었다.
일관되고 공정하며 오류가 없는 사법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한겨레>의 기획보도는 심각한 오판의 실체를 잘 드러낸다. 친구의 죄를 뒤집어쓴 한 사형수는 8년이 지난 뒤에야 무죄가 드러났다. 진범인 친구의 고백이 있었고 감형으로 사형 굴레를 벗어났기에 가능했다. 세 차례의 사형 집행을 무사히 넘기지 못했다면 억울한 원혼이 됐을 것이다. 지금도 적절한 변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법정의 편견에 묻히거나, 과거 인혁당 재건위 사건처럼 정치적 희생자가 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사형의 범죄 억지력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흉악범을 영원히 격리한다는 명분은 갱생을 목표로 한 교정 원칙과도 모순된다. 인육을 먹으며 세상을 증오했던 지존파도 종교에 귀의해 장기를 기증한 뒤 교수대에 올랐다. 피해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은 가해자를 겨냥한 한풀이가 아니라 그들의 정신적·경제적 어려움을 사회가 지원하는 것이다.
사형제를 폐지한 나라들도 처음부터 여론의 지지를 받은 건 아니다. 프랑스는 사형제 폐지 법안에 국민 66%가 반대했지만, 의회는 “올바른 입법이 국민의 뜻”이라며 통과시켰다. 우리는 15대 국회 이후 세 차례나 사형 폐지안이 제출됐으나 제대로 논의조차 못했다. 얼마 전 법무부가 사형제 존폐를 공식적으로 검토하기로 한 건 다행스런 일이다. 우리 사회의 성숙함을 한 단계 끌어올릴 기회를 잃어선 안 된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