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28 20:27
수정 : 2006.03.28 20:27
사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하 1호선)이 오늘 3000번째 무대에 오른다. 기적이다. ‘1호선’이 1994년 서울 동숭동 학전소극장에서 출발할 때 연극동네는 제작진의 ‘미친 짓’을 안타까워했다. 사실 1호선은 실패할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었다. 뮤지컬은 고비용 탓에 대개 대극장용으로 제작되고, 통속적인 주제를 취한다. 반면 이는 180석짜리 소극장용으로 제작됐고, 고발성이 강하다. 지금은 90년대의 아련한 풍경이 됐지만 옌벤 처녀, 혼혈인, 실직자, 윤락녀 등이 풀어내는 것이니, 넋놓고 즐길 순 없다.
그러나 ‘1호선’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졌다. 1000번째 공연까지 6년이 걸렸지만, 2000번째는 3년9개월, 3000번째는 2년4개월이 걸렸다. 뮤지컬 본고장인 영국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다. 이런 성공은 몇가지 연유로 가능했다. 첫째, 시대의 아픔을 충실하게 반영하면서도 절망을 희망으로, 증오를 사랑으로 노래했다. 둘째, 제작진의 작가주의 정신이다. 연출자는 노래 실력, 우리말 구사력, 어울림을 보고 연기자를 뽑았다. 설경구 방은진 황정민 조승우씨 등이 ‘1호선’ 출신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소극장인데도 밴드는 라이브를 고집했다. 셋째, 투명한 제작 시스템이다. 수입과 지출은 완벽하게 공개되고, 모든 제작진이 일정한 지분에 따라 수입을 나누었다.
‘1호선’의 성공에 환호하면서도 우리 뮤지컬계를 돌아보면 우울해진다. 뮤지컬 바람이 분 것은 제법 됐다. 그러나 직수입품만 흥행에 성공했다. 뮤지컬에는 연극·무용·음악·문학·미술 등 문화적 역량이 녹아든다. 뮤지컬의 성장은 이런 역량을 높이는 지렛대가 된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 제작진의 작가주의 정신, 국민의 사랑이 결합된다면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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