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4.16 18:53
수정 : 2006.04.16 18:59
사설
현대차그룹이 불법 금품로비를 통해 550억원의 계열사 부실을 털어낸 혐의가 드러났다. 거액의 로비자금이 유명 회계법인 대표를 통해 국책은행 고위 간부한테 흘러갔고, 금융감독 당국 등 정·관계 인사의 개입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공적자금으로 기업부실을 메우는 건 일종의 사회적 비용이다. 외환위기 충격으로 일시적 위기에 빠진 기업을 국민 세금으로 되살렸다면 오히려 손뼉을 칠 일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이런 부실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을 악용해 검은 뒷거래를 통해 계열사 부채 일부를 탕감받은 뒤, 이를 싼값에 되사들였다. 도덕적 해이를 막으려는 규정은 제3자인 구조조정 전문회사를 내세워 피해갔고, 비자금으로 건넨 로비자금은 위장 입찰을 꾀하고 입찰가격을 미리 빼내는 데 쓰였다. 나아가 이렇게 회생한 계열사들은 경영권 승계 자금과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저수지 구실을 했다. 공적자금으로 되살린 기업을 자신의 몸불리기와 경영권 승계 도구로 활용한 행위는, 검찰 말대로 “경악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로비대상으로 지목된 금융당국과 기관들은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한다. 당시는 부실채권이 시장에 쏟아지는 상황이어서, 적법한 절차를 거쳤더라도 조그만 편의를 봐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특혜가 되던 때였다. 핵심 간부들이 돈은 받았지만 불법은 없었다는 해명은 손으로 해를 가리는 격이다.
이번 일은 현대차 비자금 용처의 첫 출구에 불과하다. 비자금 규모는 수백억원대로 불어났고, 새로운 로비와 비리 혐의도 계속 드러나고 있다. 용처와 로비 수사도 중요하지만 현대차의 비자금 조성과 경영권 편법승계 의혹을 적당히 정리하고 넘어가선 안 된다. 공적자금 비리 또한 대충 덮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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