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4.17 18:35
수정 : 2006.04.17 18:54
사설
국가정보원이 열린우리당에 국정원 개혁 중단을 요청했다고 한다. 열린우리당은 쇄신안의 국회 제출을 포기하고, 야당 요구에 공동대응을 하자는 것이다. 국회 통제 강화 등 제도적 개선을 거부하도록 여당에 재촉한 셈인데, 그 모습이 마치 빚 독촉을 하는 채권자와 같아 기이하기만 하다.
많은 유권자는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좀더 강력한 국정원 쇄신을 요청했고, 이를 받아들인 정치세력이 집권했다. 국정원의 불법행위로 말미암아 피해를 봤다고 믿어온 국민으로선 당연한 요청이었다. 정치인도 피해자였으니, 국정원 개혁은 국민적 합의라 해도 무방하다. 게다가 지난해 드러난 무차별 불법도청은 국정원의 인권유린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국민의 정부 아래서도 자행된 것을 보면, 국정원의 행태는 타성이나 습관 문제가 아니라 제도 문제임이 명확해졌다.
그러나 국정원은 불법도청 사건이 드러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집권당에 개혁 포기를 종용했으니 그 기고만장함에 참으로 착잡하다. 정권이 임기말로 접어들었다고 판단한 것일까, 아니면 과거처럼 권력교체기에 자신의 정치적 효용가치를 이용해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일까.
문제는 정치권이다. 정치인들은 그동안 수사권 폐지, 국내정보 수집 금지, 예산통제 강화 등의 공약을 수도 없이 해 왔다. 그러나 집권만 하면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다가, 국정원 우산 속에 들어가 버린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가 그랬다. 참여정부도 예외일 것 같지는 않다.
한나라당은 나름의 개편안을 내놓았다. 철석같이 약속했던 여당은 당론조차 확정하지 못했다. 국정원의 단맛에 빠졌던 이전 정권들은 임기말 뒤통수를 된통 맞았던 사실을 기억도 못하는 걸까.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