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진실화해위)’가 우선조사 대상 388건을 확정하고 본격적인 조사활동에 나섰다. 지난해 12월부터 접수한 5천여 건 가운데서 선정한 사건들이다. 진실과 화해를 향한 진실화해위의 항해가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출범 전부터 친일부역 세력과 과거 독재정권의 수혜자 등 수구세력은 ‘과거에 사로잡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느니 ‘과거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 한다’느니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려 한다’느니 따위의 이유로 진실화해위의 출범을 방해했다. 그러나 진실 규명 없이 상처의 치유나 용서·화해는 기대할 수 없다. 화해 없이 사회통합은 불가능하며, 분열된 상태로는 공동체의 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 따라서 진실화해위엔 우리 사회를 과거사의 주술에서 풀어내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소임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진실화해위의 앞길도 험난하기만 하다. 입법과정에서 강제조사권이 삭제됐다. 동행명령권이나 자료 제출 및 열람 요구권이 있긴 하지만, 거부해도 과태료를 물리는 것이 고작이다. 청문회도 사라졌다. 예산 심의 과정에선 30% 정도의 예산이 깎였고, 이로 말미암아 조사 인력을 애초 계획의 절반에 불과한 120명만 채용했다.
그럼에도 진실화해위에는 한치의 소홀함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진실화해위를 좌초시키려는 세력이 너무나 많은 탓이다. 조사권의 제약, 예산 및 인력 부족 등은 국정원이나 국방부, 경찰 등 각 기관이 가동 중인 과거사위원회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 조사 결과가 서로 다르거나 충돌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정치적 활용 가능성 때문에 조사 활동이 위축돼선 안 되지만, 조사결과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용의주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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