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4.30 19:59
수정 : 2006.05.01 02:04
사설
정몽구 회장 사법 처리를 앞두고 현대·기아차그룹이 보인 행태는 사실 실망스러웠다. 과장된 경영 위기론을 확산시키며 ‘정 회장 구하기’에 급급했다. 정상 참작을 호소하는 수준을 넘어 정 회장이 없으면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을 것처럼 떠든 건, 야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볼썽사나웠다. 낡은 지배구조를 스스로 선전한 꼴이다. 정상적 기업이라면 오히려 정 회장이 자리를 비워도 경영에 큰 차질이 없다고 해야 옳다.
정 회장이 구속 수감된 뒤, 현대·기아차는 부사장급 이상 대책회의를 열어 비상대책기구 구성이나 대행체제 없이 계열사별 책임경영 체제로 꾸려가기로 했다고 한다. 당장 획기적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길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 구하기’일 수 있다. 하지만 대행 체제를 검토했다는 모습 등에서는 미덥잖은 구석이 엿보인다. 1인 지배체제 틀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킬 만하다. 과도체제로 가다가, 정 회장이 풀려나면 다시 옛 체제로 돌아간다면 사태의 교훈을 몰각하는 처사다.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 계기로 삼으려면 시장과 투자자, 나아가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헤아려야 한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룹이 통째로 혼란을 겪는 일을 다시 겪지 않는 길도 거기에 있다. 시장과 투자자는, 투명하고 책임성과 전문성을 갖춘 지배구조로 환골탈태하길 바라고 있다. 한마디로, 한 사람의 ‘황제’를 위한 기업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그게 진정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정 회장을 구속했는데도 현대차 주가나 외국인 투자자가 흔들리지 않는 까닭을 현대·기아차는 곱씹어봐야 한다. 당연히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기대는 진정한 지배구조 개선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