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01 18:21
수정 : 2006.05.01 18:21
사설
어제 새벽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의 서장대 누각 일부가 방화로 소실됐다. 며칠 전에는 북한산 등산로 일대에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났고,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한 창경궁 문정전도 방화 피해를 봤다. 가뜩이나 건조한 날씨에 큰 불로 번지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불특정 다수를 향한 방화 범죄가 늘어나는 추세는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소방방재청 집계를 보면, 지난해 전체 화재 건수는 5년 전보다 10% 가량 줄었지만 방화 건수는 되레 23%나 늘었다. 1998년 이전 인구 10만명당 1명 안팎이던 방화범 비율도 3.56명으로 급증해 일본의 2배에 이른다고 한다. 수법도 대담해졌다. 최근 방화 대상이 된 곳들은 모두 사람의 발길이 잦은 공공 시설이다. 뒷골목길이나 쓰레기 더미에 불을 지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당국은 올해 초 ‘방화와의 전쟁’까지 선포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방화는 모방범죄의 유인이 매우 강한 만큼, 취약한 공공시설과 사찰 등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 우선돼야 한다. 낙산사를 잿더미로 만든 강원도 산불이나 수백명이 희생된 대구 지하철 참사처럼 초기 대처가 미흡해 피해를 키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화성 방화 용의자는 카드빚 때문에 홧김에 일을 저질렀고,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지른 건 토지보상 문제에 불만을 품은 60대 노인이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방화는 불안한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소방행정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불만과 주장을 토로할 합리적인 수단을 갖지 못한 이들이 방화라는 극단적인 의사 표현 방식을 선택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소한의 사회적 연결망과 안전망도 없이 소외된 이들을 극단적 절망으로 내모는 현실을 냉철히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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