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09 19:44
수정 : 2006.05.09 19:44
사설
3년 전 노조 활동가들을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사용자 쪽의 손배·가압류 공세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걱정되는 건 이 공세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임과 고용 불안에다가 손해배상 청구라는 또다른 위협이 이들을 옥죄는 것이다.
2003년 초 두산중공업 배달호씨를 시작으로 노동자들이 손배·가압류에 죽음으로 저항하면서, 이 문제가 최대 노사 쟁점으로 부각됐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와 노사는 손배·가압류 남발을 막을 사회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이 협약은 당시에도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 우려가 이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기업들이 노조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배 청구액이 450억원으로 한 해 전보다 일곱 배 늘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 액수의 88%가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니, 또다른 ‘죽음의 저항’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조합법은 합법적인 쟁의 활동을 두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노조 활동은 ‘손해를 끼치면 책임져야 한다’는 일반적인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특수한 활동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손배가 기승을 부리는 건, 노조의 행의가 약간의 문제만 있어도 불법으로 규정하는 정부와 사법부의 태도 때문이다. 사쪽의 불법에는 너그러우면서 노조엔 더없이 엄격한 이중잣대가, 많은 노사 갈등과 마찬가지로 손배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그래서 진정한 대책은 적법한 쟁의행위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지만, 단기적인 해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손배 문제를 적극 중재하는 한편, 가압류 한도를 더 줄이고 보증인의 배상책임을 제외하는 등의 제도 개선에 나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비극의 반복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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