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17 18:33
수정 : 2006.05.17 18:33
사설
조기 영어학습 광풍이 유·초등생 부모들 사이에 불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서울 강남이나 목동 등 중산층 밀집 지역에선 영어로 노래하고 놀고 배우는 영어유치원이 이미 오래 전부터 유행하고 있다. 수강료가 월 50만원에서 100만원에 이른다. 초등생 사이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어능력시험’이 확산돼 왔다. 그러나 초등학교 1·2학년의 74%가 영어 과외를 받고 있거나 받은 경험이 있고, 유치원생 부모 87%가 아이가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운다고 답한 것은 뜻밖이다. 빈곤층을 제외하고는 유아에게까지 영어 사교육을 하는 셈이다.
교육계에선 2008년부터 초등 1·2학년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 계획이 영어 사교육을 유아에게까지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계획 발표 이전부터 영어유치원이 유행하고 젖먹이에까지 과외를 시키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일각에선 이런 광풍을 조장하는 사회 풍토를 개탄하기도 한다. 재계는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가야 한다며 능숙한 영어로 무장한 인재의 배출을 요구한다. 정부는 이에 부응해 외국어고를 다수 설립했다. 이들 학교들은 대학입시 명문고로 변질돼, 아이들을 영어학습 경쟁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고교·대학 입시와 기업체 채용 관행이 그러하고,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풍토만을 탓하고 있을 순 없다.
따라서 중요한 건 영어를 효율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가르치고, 어떤 학생이나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이다. 이런 노력 없이 초등 1·2학년으로 영어교육을 확대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10여년 학교에서 배운 영어조차 실생활에서 이용되지 못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마구잡이 조기 영어교육을 방치할 수도 없다. 우리 아이들의 창의성과 인지능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적령기별 효율적인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학교에서 시행하는 것을 더 늦춰서는 안 된다. 우리와 어문 구조가 비슷한 핀란드가 학교 교육만으로 높은 영어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은 우리가 따를 만한 좋은 본보기다. 개발 과정엔 교육 당국이나 전문가뿐 아니라 시민사회도 나서야 한다. 학부모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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