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21 21:40
수정 : 2006.05.21 21:40
사설
중국 랴오닝성 선양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있던 탈북자 4명이 이웃한 미국 총영사관으로 담을 넘어 들어간 일이 일어났다. 탈북자들은 이 과정에서 한국 총영사관 직원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탈북자들이 중국내 미국 공관에 들어간 것도 처음이거니와, 한국행이 보장되는 한국 공관을 이탈해 무리하게 미국 공관으로 옮겨간 것도 새로운 양상이다.
중국내 미국 공관은 미국행이 보장되는 곳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국의 동의가 없으면 미국행 비행기를 탈 수 없다. 그에 앞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의 난민지위 판정과 미국행 의사 확인, 난민 심사를 거쳐야 한다. 얼마 전 동남아 나라를 통해 미국에 ‘기획망명’한 탈북자 6명과는 경우가 다르다. 그런데도 이들이 미국 총영사관으로 간 데는 탈북자 지원 조직의 부추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을 떠나기가 어려워지는 것을 무릅쓰고 정치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쪽을 선택하게 한 셈이다.
미국이 탈북자를 수용하는 근거가 되는 북한인권법은 북한 체제를 압박하기 위한 정치적 성격이 짙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탈북자 정책도 ‘미국=선, 북한=악’이라는 전제 아래 북한 체제의 약점을 공략하고 선전 효과를 얻으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활동하는 여러 탈북자 지원 조직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때로는 한국의 탈북자 및 대북 정책에 대한 적대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탈북자를 지원한다는 활동이 되레 탈북자들에게 더 큰 어려움을 주게 되는 일이 생긴다. 과거 여러 차례 있었던 무리한 기획탈북이 그랬고, 이번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적어도 수만명에 이르는 중국내 탈북자 문제는 관련국 모두 분명한 인도주의적 원칙을 가질 때 해결할 수 있다. 아무런 조건 없이 탈북자를 받아들이는 우리나라가 중심이 돼야 하는 것도 분명하다. 섣부르게 정치적 의도를 앞세우는 것은 다수 탈북자를 위한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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