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국 규모의 선거치고 이렇게 심심한 선거는 처음이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엊그제 ‘선거 후 정계개편 추진’ 가능성을 제기하더니, 어제는 선거운동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대국민 긴급호소문까지 내어 “한나라당의 싹쓸이만은 막아달라”고 읍소했다. 더는 기댈 데가 없다고 판단했는가 보다. 반면 압승이 예상되는 한나라당 후보자들은 각종 토론회에 불참하는 등 검증 기회를 회피하고 있다. 공연히 약점만 드러낼 필요가 어디 있을까. 선관위가 토론회 참석을 재촉할 정도란다.새삼 정당과 후보자들의 호소와 자세를 두고, 시비를 따질 일은 아니다. 그것이 불법이나 편법이 아니라면,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유권자가 알아서 심판하고 선택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정당이나 후보자도 심심풀이로 선거에 나섰을 리는 없으므로 그들에게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이를 판단하는 유권자다.
지방자치제 시행 11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특히 유권자들의 무관심과 소수 맹렬 유권자의 ‘묻지마 투표’는 많은 지방자치단체를 비리백화점으로 만들었다. 지난 2월 감사원은 전국 250개 지자체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선출직에겐 가장 강력한 행정조처인 주의처분을 단체장 18명에게 내렸고, 공무원 26명에겐 검찰 수사를 요청했으며, 249명에게는 징계를 요구했다. 이들은 되지도 않는 사업을 벌였다가 예산 4200억원을 날렸고, 멋대로 자리를 만들어 제 사람을 심었다. 심지어 예산을 개인 용도로 빼돌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시행착오 속에서 시민사회는 성숙하고, 지자체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도 많이 향상됐다. 언론도 권력 투쟁형의 보도에서 벗어나, 후보자의 공약과 자질 검증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유권자들이 더 좋은 후보를 선택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하지만,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의 최종적인 열쇠는 유권자에게 있다. 유권자가 꼼꼼히 따져 선택한다면 지자체는 변하겠지만, 정치적 편향이나 선전에 매여 묻지마 투표를 한다면 민주주의의 풀뿌리는 썩어버린다. 작대기만 꽂아도 몰표가 나오는데, 어떤 단체장이 지역민을 위해 헌신하겠는가. 부정과 부패, 성희롱과 공천비리를 일소하려고 노력하겠는가.
유권자가 변해야 지자체가 변한다. 남은 닷새, 따지고 또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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