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법부 수뇌부의 대규모 교체가 눈앞에 다가왔다. 7월에는 대법관 5명, 8~9월에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5명의 임기가 잇따라 끝난다. 대법원은 내달 초 제청자문위원회를 열어 대법원장에 후보자를 추천할 예정인데, 헌재 재판관 교체와 맞물려 어느 때보다 많은 인물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린다.전체 대법관의 3분 1 이상이 바뀐다는 점에서 이번 수뇌부 개편은 사실상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의 성격을 결정짓는 국가적 사안이다. 관련 단체들이 자체 선정한 후보자를 공개추천하고 다양한 의견을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법원이 투명하고 합리적인 원칙과 기준에 따라 후보자를 선정할 것으로 기대한다.
무엇보다 이번 대법관 인선은 사법부 개혁과 다양화라는 시대적 흐름을 공고히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난해 취임한 이용훈 대법원장 권위주의 시절 사법부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면서 열린 사법부를 주창했다. 지난해 10월 3명의 대법관을 교체할 때 기수와 서열 위주의 인사 관행을 과감히 떨쳐낸 것은 이런 변화 의지를 내보인 긍정적 변화였다.
이런 점에서 이번 인사가 ‘조직 추스르기용’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법조계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건 유감스럽다. 이른바 ‘정통 법관’ 중용론이 퍼지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파격 인사를 둘러싼 법원 내부의 동요와 반발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풍부한 판결 경험보다 행정 요직을 거친 법관들이 주로 거론된다니 과거처럼 다시 서열 위주의 인사로 회귀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법원 이기주의에 밀려 정책법원으로서의 거듭나겠다는 대법원의 변화 방향이 뒤틀려선 안 될 일이다.
대법원 다양화가 출신 직역 안배에 치우친 구색 갖추기로 흐르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검찰, 학계, 여성 등 어느 직역 출신이냐보다 중요한 건 대법관으로서의 자질과 적격성이다. 합리적인 판결과 성향을 갖춘 합당한 인물이 있다면 모를까, 직역 안배 차원에서 무조건 할당하는 방식은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것이요, 자칫 무늬만 다양화에 그칠 수 있다. 다양화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인적 구성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한 나라의 이성과 상식의 균형추와 구실을 해야 한다. 때문에 인적구성이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우리 대법원 판례와 헌재 결정을 보면 이런 합리적인 균형을 갖추었다고 보기엔 여러모로 미흡하다. 기본권 침해 보호는 소홀하고, 소수자 보호는 미흡하며, 기업범죄에는 너무 관대하다는 게 우리 판단이다. 그럼에도 보수언론과 기득권층은 대법원 구성 다양화를 진보적 인사들로 대법원을 채우려는 색깔론으로 몰아붙이는 건 가당찮다.
갈수록 사회 구성원의 대립과 갈등 양상은 다양해지고, 심판받지 않는 권력인 최종 심판자로서의 사법부의 구실 또한 중차대해지고 있다. 사법개혁위원회가 “대법원은 최고 사법기관으로서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어야 하며, 경력·성별·가치관 등 여러 측면에서 다양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건의를 충분히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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