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30 19:58
수정 : 2006.05.30 23:52
사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 징역 10년과 추징금 21조4484억원, 벌금 1천만원의 중형이 내려졌다. 어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가 내린 선고는 비단 개인 김 회장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개발시대부터 이어져온 재벌 적폐에 대한 단죄고, 잘못된 관행에 기댄 구시대적 경영이 법질서에 앞설 수 없다는 법적 선언이다. 한국경제사에서 제2의 김 회장식 경영이 더는 존립할 수 없음을 알리는 경고이기도 하다.
맨손으로 한국 두번째 재벌을 일군 김 전 회장은 한때 젊은이의 꿈이었다.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는 그의 에세이집은 백만부 넘게 팔렸다. “다른 사람의 입장은 아랑곳않고 그저 자기만 잘 살겠다고 날뛰는 데 우리 사회의 문제가 있다.”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깨끗한 승부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깨끗하고 떳떳하게 싸우는 것이다.” 말뿐이었다. 그 뒤엔 짙은 어둠이 있었고, 전에는 모두 알지 못했다.
김 전 회장이 장기간 국외 도피생활을 끝내고 돌아 왔을 때 여론은 분분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한국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감안해 선처할 것을 주문했다. 물론 한국경제 외형을 키우고 수많은 직원의 일자리를 마련해 준 공은 있다. ‘세계경영’ 깃발을 내건 도전 정신과 기업가 정신은 기업인들이 본받을 만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공적이 기업윤리와 법질서에 앞설 수는 없음은 분명하다. 한국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과거의 잘못된 경영 관행 고리를 끊어야 하며, 대우그룹 사태가 그 분수령이 돼야 한다. “대우 부도로 대출 금융기관, 기관·일반투자자의 막대한 손해로 이어졌고,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돼 온국민이 부담을 지게 됐으며, 수많은 대우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들이 직업을 잃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됐고, 대외 신인도와 국가 이미지가 추락하게 됐다.” 재판부의 판결 요지는, 기업인의 잘못된 경영이 얼마나 큰 피해를 줄 수 있는지를 뭉뚱그려 말한다.
대우그룹 사태는 과거사가 됐다. 대우그룹 몰락으로 어려움에 처했던 계열사들도 공적자금 수혈을 통해 차례로 살아났다. 이제 새겨야 할 건 대우그룹 사태에서 얻을 교훈이다. 아직도 대우그룹과 같은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재벌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틀을 바꿔야 할 터이다. 경제범죄가 더는 ‘경제살리기’란 보호막 뒤에 숨을 수 없음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여론도 좀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김 전 회장이 여전히 대우사태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외부 탓이었다고 돌리는 모습은 매우 유감스럽다. 수많은 대우 가족이 몰락했음에도, 김 전 회장 가족은 여전히 수천억원대의 자산가로 남아 있는 현실도 우리에게 또다른 숙제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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