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31 19:30
수정 : 2006.05.31 22:16
사설
5·31 지방선거에서 예상대로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참패하고 한나라당이 압승했다. 수도권 여당 광역단체장 후보의 득표율이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인 영남권과 비슷할 정도였다. 집권 여당으로서는 역대 최악이다. 선거운동 기간에 벌어졌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피습 사건이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작용한 측면도 있지만, 열린우리당의 참패는 박 대표 사건 이전부터 예정돼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지방선거나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진 적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번 선거는 패배의 성격이 다르다. 과거에는 집권세력의 부패나 비리 등에 대한 심판의 성격으로 국민들이 여당에 등을 돌렸다. 이번 선거에서 부패(공천헌금)와 비리(성추행) 문제는 여당이 아니라 야당인 한나라당에서 불거졌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야당을 선택하고 여당을 외면했다. 심지어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을 주장한 여당의 호소에도 귀를 막았다.
왜인가. 바로 노무현 정부와 여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총체적인 불만이 누적돼 폭발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정부의 책임이냐 당의 책임이냐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집권세력 전체에 대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인 것이다. 독선과 오만, 쓸데없고 불필요한 논란과 대립, 대통령의 가벼운 언행에 국민들의 실망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것이다. 또 지난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몰아줬음에도 개혁을 추진하지 못한 무능도 민심이반의 원인이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번 패배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그동안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참회와 진정한 자성 없이 서로 네탓 타령이나 하거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정계 개편론에 몰두해서는 민심을 두 번 거스르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기득권을 버렸던 창당 초심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당 지도부 교체 여부나 민주당과의 합당 추진 등을 놓고 내부 다툼만 벌인다면 영영 외면받을지 모른다.
한나라당은 이번 승리를 섣불리 자기들에 대한 지지라고 해석하는 또다른 오만에 빠져서는 안 된다. 자기 힘으로 승리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기 없는 여당 덕분에 얻은 반사이익인 측면이 크다. 부동산값 잡기와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는 등 소수 기득권층을 편드는 정책을 고집해서는 현재의 지지율이 신기루가 되기 쉽다. 4년 전 지방선거 승리에 취해서 정부·여당의 발목만 잡는 정치를 하다가 대선에서 패배했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한나라당은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정당답게 무조건적 반대보다는 대안을 내놓는 정치, 협조할 것은 협조하는 큰 정치를 펴기 바란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세력의 대표주자로서 지위를 지켰지만, 기대만큼의 진전을 거두지 못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양강구도 탓에 손해 본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열린우리당의 이탈표를 왜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는지 자성이 필요하다. 개혁진보 세력의 대표선수가 되려면 외연을 대폭 확대하는 질적인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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