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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31 22:17 수정 : 2006.05.31 22:17

사설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하 오대산본) 47책이 일제에 강탈당한 지 93년 만에 돌아온다. 소장자인 일본 도쿄대가 서울대에 기증하는 형식이어서 께름칙하지만, 무지막지한 우익의 반발을 고려해 두 나라 국립대학 사이 학술 교류와 협력으로 포장한 도쿄대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다만 이번 환수가 우리 불교계와 시민단체 등 순수하게 민간 차원에서 일궈낸 쾌거라는 사실은 거듭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조선왕조실록은 일본에 가장 많이 핍박당한 우리 문화재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서울 춘추관과 충주·전주·성주 등 네 곳에 보관되던 실록 가운데 전주 사고본을 제외하고 모두 불태웠다. 조선은 전주 사고본으로 넉 질을 더 제작해 정족산(강화), 태백산, 오대산, 적상산(무주) 사고에 보관했다. 이 가운데 전주본의 오탈자를 바로잡은 오대산본은 일제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시다케가 일본으로 실어갔다. 1923년 간토 대지진 때는 1천여 책 가운데 74책(27책은 1932년 서울대 규장각에 반환됐다)만 남기고 모두 불타버렸다.

오대산본 환수는 약탈 문화재 반환의 새로운 본보기를 세웠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오대산 사고의 관리자인 월정사(주지 정념 스님) 등 불교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3월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를 꾸려 일본 정부와 도쿄대를 압박했다. 그동안 도쿄대와 두차례 협상을 벌였고, 어제 3차 협상이 예정돼 있었다. 민간이 협상을 주도했기에, 정부가 나설 경우 우려되는 국가간 자존심 싸움이나 외교적 마찰을 피할 수 있었다. 게다가 박정희 정권은 한-일 협정 때, 정부 차원에서 문화재 반환을 더는 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터여서 정부의 처지가 어려워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민간이 약탈 문화재 환수에 앞장서고 정부에서 이를 적극 뒷받침하는 체제가 갖춰지기를 기대한다. 국외의 우리 문화재는 확인된 것만 스무나라 7만4434점에 이르며, 이 중 46%(3만4331점)가 일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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