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31 22:17
수정 : 2006.05.31 22:17
사설
경기 판교 새도시의 임대아파트를 공급받은 50대 철거 세입자가 계약을 포기하고 엊그제 음독자살을 기도했다. 터무니없이 높은 임대료 때문에 청약 전부터 원성이 높았는데 결국 이런 안타까운 일까지 빚어졌다.
이번 일은 집없고 돈없는 실수요자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임대주택 정책이 부른 예고된 불상사다. 판교 민간 임대아파트는 보증금이 최고 2억4천만원, 월세는 59만원에 이른다. 전체 임대료가 같은 평형의 일반 아파트 전세금보다 높고 분양값과 맞먹는 수준이다. 철거 세입자는 물론 무주택 서민들한테는 은행 돈을 빌린다 해도 버거운 금액이다. 음독한 세입자뿐 아니라 판교 민간 임대아파트에 당첨된 1692가구 중 절반 이상이 중도에 계약을 포기했다. 내집 마련 기회를 잡고도 스스로 포기해야 한다면 누군들 억장이 무너지지 않겠는가.
땅값 등 원가가 높아 임대료가 비싸다는 설명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판교에 공급되는 공공(주공) 임대아파트는 민간보다 임대료가 20~30%나 싸다. 주공과 달리 민간 건설사들은 정부 대출(국민주택기금)을 거부하고 월세 전환이율을 턱없이 낮게 책정한 때문이다. 공공 임대 수준으로만 임대료를 낮춰도 입주자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정부는 임대료 부담이 커질 걸 뻔히 알면서도 이익만 챙기려는 민간의 셈범을 그대로 방치했다. 돈없는 당첨자들이 포기한 미계약분은 일반 선착순 모집에서 대기표가 수백만원에 팔릴 정도로 불티가 났다고 한다. 집없는 서민을 위한 임대아파트가 결국 여유 계층과 투기꾼들 손에 넘어간 셈이 아닌가.
비단 판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송파 새도시 등에도 대규모 민간 임대아파트 건설이 예정돼 있다. 토지공사와 건설업체의 이익을 대폭 줄이는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서민들한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임대료 인하뿐 아니라 임대주택 정책 전반을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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