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오늘자 한겨레 신문 사설의 논조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물론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가 "단순히 노무현 정부와 집권여당의 참패만을 뜻하지 않"고 "10여년간 국정을 주도해온 진보·개혁세력 전체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의미를 갖는다"는 말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민심이 열린우리당에 등을 돌린 이유를 첫째로 "집권당은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이상주의적 정치 과제에만 치중했을 뿐 부의 집중을 완화하는 문제 등 사회 경제적 과제를 다루는 데 실패"한 것으로 들었고 둘째로는 민족 문제에 대한 혼선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웠고, 미국과의 관계도 오락가락하면서 민족적 자존심을 형편없이 훼손시켰다."고 언급했는데 내가 실망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서론도 대체로 나이브하고 이러한 총론에 해당하는 사설의 내용도 다소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서론이 대체로 나이브하다는 것에 대해 지적해 보자면 집권당이 부의 집중문제를 완화하는 등의 사회경제적 과제를 다루는 데 실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이상주의적 정치과제에만 치중한 것과 연관짓는 것은 그다지 온당치 않다는 점이다. 지역주의 청산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당연히 필요한 것이었고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주의라는 구시대 유물은 또다시 청산되어야 할 과제임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또한 미국과의 관계가 오락가락해서 민족적 자존심이 훼손되었다는 것은 다른 정부와 비교없이 절대평가로만 보면 동의하겠으나 민족문제에 대한 혼선이 그 어느때보다 혼란스러웠다는 것은 대체로 동의하기 어렵다. 미국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민족문제'라는 것이 '남북문제'를 말하는 듯한데 대북정책의 일관성은 기껏해야 김대중정부 이후에야 가능한 것이었고 노무현정부는 대체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국제관계정세와 북한사회의 불안정성은 언제나 대북관계, 민족문제의 변수로 작용해 온 것은 항용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러한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대북정책의 일관성은 비로소 장기적으로 지속되어 가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적절한 평가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두 번씩이나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줬는데도, 개혁을 완수해 나가지 못하고 대연정을 제안한 것은 그만큼 개혁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 개혁정치세력이 다소 논란에 휩싸이긴 했지만 그것이 적대시 한 것이라는 것에 누가 동의하겠는가. 물론 그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왜 강력하게 추진하지 못했는가 에 대한 비판이라면 동의하겠지만 말이다.
또한 다음의 논조도 언뜻 적절한 듯 보이지만 대체로 나이브하다
"부동산 투기 근절, 양극화 해소, 증세론, 복지재정 확충, 균형개발 등 개혁적 목표를 잡아놓고도,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해 시행착오만 되풀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이나 전교조, 민주노총, 시민운동 진영도 마찬가지다. 노 정권을 올바로 견인해내고 개혁과제를 선별해 힘을 모으기보다는 각자 자기 목소리만 내는 등 기득권화한 측면이 있다. 물론 여기에는 탈권을 위한 수구언론들의 집요하고 악의적인 여론 전파나 야당의 발목잡기도 한몫했다."
부동산 투기 근절, 양극화 해소, 증세론, 복지재정 확충, 균형개발 등의 개혁적 목표는 현시대적 과제임에 분명하다. 악의적인 신문매체와 야당의 터무니 없는 비판은 비판이 아니라 그저 비방이었다. 이 들이 비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들에게 손해가 가기 때문이다. 재벌과 개발독재의 연속성은 여전히 우리시대의 가벼운 현상들의 무거운 배후로 힘을 과시하고 있으며 그 기득권의 청산은 의지가 필요하고 개혁의 피로를 견디어 내야 가능한 것이지만 그 기득권을 수호하여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세력들의 움직임은 자발적이고 능동적이다. 그들은 잇속 빠른 장사치와 같이 민첩하다. 노무현 정부는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정책적 노력을 보여 준 것은 분명하다. 이와 같은 대결구도 속에서 개인적으로는 노무현정부의 최대 정책실패인 고용불안정, 지속적인 청년실업, 엄청난 임시직 노동자의 양산으로 인한 사회적 불만의 감정이 최대로 작용한 결과가 바로 5·31지방선거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수구언론과 악의적인 여론 전파와 야당의 발목잡기는 한 몫한 정도가 아니다.사설에서 언급하는 되먹지 않은 대연정론은 노무현 정부가 행정부와 입법부를 석권하고도 그만큼 수구세력 개혁, 즉 기업재벌과 부동산 재벌과 사법부, 교수, 교육부, 정치인, 관료 등등 수많은 반대세력과의 대결에서의 좌절이 표면에 드러난 하나의 사건에 불과한 것이다. 엄청난 임시직 노동자의 양산의 문제만 해도 보라.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기업과 재벌의 수구적 태도를, 한나라당의 보수적 태도를, 그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타협안을..
노무현정부는 부지런히 싸웠다고 해도 이번 선거이전에 이러한 싸움에서 대체적으로 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판되어야 한다. 세금정책의 경우 종부세, 증여세의 확대는 타당하나 정부의 세금정책에서 실질적으로 비판대상을 키우게 된 이유는 간접세도 함께 대폭 증가한 것 때문이다. 유류비와 담배세 등의 간접세는 정부가 과다하게 부과되는 것으로 노동자 서민들은 체감한다. 세금정책의 큰 틀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세금정책에 대한 저항감을 소수 부자의 강한 저항을 좀 약하게 하자고 모든 노동자 서민들에게 정부세금 정책을 불신하게 하는 하나의 예가 된다. 사회정의의 싸움에서 어느곳에도 완승이란 있을 수 없을 것이지만 어느정도 책임있게 이겨주었어야 한다 비판으로 집권여당은 선거결과를 이해해야 하고 동시에 노동자의 생활안정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고용불안으로 인한 실직자들과, 자신의 여가 시간을 노동시간과 맞바꾸어 먹고 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장애인, 노인, 병든 자와 소수위한 당파성을 고용불안정과 연관하여 곰곰히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마지막 단락은 구태의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개혁과제를 역동적으로 밀고가는 것은 내년 대선의 승패보다 중요한 문제다. 그 과정은 오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계도가 아니라 설득으로, 분열이 아니라 통합적이어야 한다."
"개혁과제를 역동적으로 밀고 가는 것이 내년 대선의 승패보다 중요한 문제"라는 것은 너무나 원론적인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과정은 오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계도가 아니라 설득으로 분열이 아니라 통합적이어야 한다"라는 말은 너무나도 사태를 나이브하게 보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노무현 정부의 개혁이 자꾸 좌절되고 타협화하는 이유는 충분히 당파적이어야 할 시점에서 그렇지 못한데 기인한 것이다.
게다가 사설의 마지막 언급은 다소 엉뚱하기 까지 하다. "개혁 진보세력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역사의 한 시대를 장식하고 말 것인지, 아니면 시행착오를 딛고 민주주의를 생활 속에 구현하는 헌신적 동지로 다시 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생활 속에 구현하는 것이 이 사설의 결론인가? 그래서 오만방자한 정권이 이제는 헌신적 동지로 다시 뛰어야 한다는 것이 이 사설의 결론인가?
그렇다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생활 속의 투쟁은 아직도 장애인, 병든 자, 실직자, 임시직 노동자들, 수많은 사회적 약자, 소외된 이들의 몫으로 남아도 될까?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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