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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05 18:14 수정 : 2006.06.05 18:14

사설

가나에 1-3으로 지던 날 밤, 모든 공중파 텔레비전은 월드컵 축구 관련 프로그램으로 도배질했다. 뉴스는 머릿기사를 포함해 절반 정도를 월드컵 얘기로 채웠고, 뉴스를 전후한 다른 프로그램도 월드컵 관련 쇼나 응원뿐이었다. 하다못해 코미디 프로그램마저 소재는 월드컵이었다. 미국과 멕시코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뒤 12년을 다룬 〈한국방송〉의 르포가 거의 유일한 예외였다.

이날 시청자를 획일적인 열광 속으로 몰아간 것은 미디어였다. 그러나 배후에서 이를 주도한 것은 정치와 자본이었다. 우리나라의 심장이라 할 서울시청과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세종로-태평로 일대는 이를 웅변한다. 이순신 장군 동상 좌우로 인도 한가운데 월드컵 스타인 박지성·이영표 선수 등의 대형 동상이 서 있다. 축구공 조형물과 월드컵 경기 사진들이 잇따라 전시돼 있고, 심지어 강북의 상징적 문화공간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전면마저 월드컵 펼침막으로 장식돼 있다. 상황이 그러하니, 교보, 동아일보, 광화문우체국, 조선일보, 서울신문, 서울시청, 삼성, 신한은행 건물 등 세종로와 태평로에 늘어선 건물을 뒤덮은 펼침막을 나무랄 순 없다. 거기엔 “우리는, 대한민국이다” “태극 전사, 당신의 승리를 믿습니다” “우리 승리하리라” 따위의 구호가 써 있다. 광화문의 거리 국기꽂이마저 ‘광화문에서 열광하라’는 내용의 깃발로 채워져 있다.

5·31 지방선거에서 현 정권에 몰매를 줬다고 해결될 국가적 현안은 하나도 없다. 모든 컵이 그러하듯이 월드컵의 속은 비어 있다. 어떤 열쇠도 없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명운이 걸린 한-미 자유무역협정,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논의의 고리가 될 대추리 문제, 날로 심화하는 계층간 격차와 갈등, 위협받는 서민 대중의 교육·복지·의료 문제, 그리고 오갈데 없는 청년 실업 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그 열광의 그늘 속에서 계약직 노동자, 홀몸 노인, 농민 등은 죽어간다.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이 아름다웠던 것은 시민의 자발성과 역동성 때문이었다. 거기에 자본과 정치, 미디어의 개입은 없었다. 문화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이런 개입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고 한다. 시민과 함께 2002년처럼 공동체의 결속과 믿음에 대한 순정한 열망이 표출되는 월드컵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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