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13 18:51
수정 : 2006.06.13 18:51
사설
현행 예산회계법에는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를 포함해 모든 국가기관의 예산은 행정부에서 짜도록 하고 있다. 헌법 54조에도 예산편성권은 정부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존 관행이 바뀔 처지에 놓였다. 국회가 최근 예산회계법과 기금관리기본법을 통합해 발전시킨 국가재정법 제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독립 헌법기관의 예산편성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넣은 것이다. 국가 재정상황을 고려해 조정이 필요한 때에는 행정부와 독립기관이 협의하도록 하되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행정부가 의견서를 독립기관에 제출할 수 있는 단서를 붙였지만, 광복 이후 처음으로 헌법기관에 독자적인 예산편성권을 사실상 주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국가기관 사이, 또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독자적인 예산편성권을 반대하는 쪽은 우선 편성권은 행정부에, 그 심의와 예산 집행에 대한 사후 결산권은 국회에 주고 있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무너진다고 주장한다. 국가 살림을 행정부가 통합관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율성과 전문성 유지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걱정한다. 또 예산편성권을 각 기관에 주면 힘있는 기관들이 마구 예산을 늘리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하고 있다.
반대로 국회 쪽은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이 도리어 헌법기관의 독립성을 해친다는 점을 든다. 다 합해도 전체의 1%에 불과한 독립기관들의 예산을 행정부가 시시콜콜 간섭해 온 것이야말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의회 등이 독자적으로 예산을 짜는 미국 등 선진국의 사례를 들고 있다. 또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이 과거 행정부가 입법부의 우위에 있던 시절에 만들어진 점을 상기시키면서, 각 기관들이 스스로 판단할 정도의 성숙성을 갖췄다고 강조한다.
양쪽 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확립된 제도를 바꾸려면 거기에 걸맞은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 각계의 의견 수렴 없이 슬그머니 제도 변경을 추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국회는 법안을 졸속으로 처리하지 말고 위헌 여부를 포함해서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이고 민주주의 실현에 맞는지 심도 있게 따져보는 것이 좋겠다. 행정부도 뒤쪽에서 언론플레이 등으로 상대를 누르려는 구태를 버리고 합리적인 토론에 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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