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15 19:27
수정 : 2006.06.15 19:27
사설
간첩 혐의로 1986년부터 12년을 복역한 강희철씨 사건을 두고 법원이 그제 재심을 결정했다. 군사독재 시절 자행된 수많은 고문·조작사건 가운데 법원이 재심 청구를 받아들인 건 강씨 사건이 세번째다. 비록 걸음이 더디긴 하나 검찰과 법원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지금까지 검찰은 자신의 치부인 고문조작 의혹을 감추기에 바빴고 법원은 번번이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지난해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함주명씨는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자백으로 명백한 증거가 드러난 경우고, 인혁당 사건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수사·재판 과정의 불법행위를 밝혀냈기에 재심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에 검찰은 당시 수사관들을 조사해 “강씨를 85일 동안 불법구금했다”는 진술을 받아냈고 재심 개시 의견서를 재판부에 냈다. 재판부 역시 독자적인 증인 신문을 벌이는 등 진실규명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검찰과 법원의 적극적인 의지만 있다면 과거사 문제의 매듭을 어렵지 않게 풀어낼 수 있음을 스스로 보여준 셈이다. 사법권력이 적극적으로 진실을 밝혀내고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것은 피해자의 진정한 명예회복과 정당한 배상으로 가는 첫단추다.
강씨는 일제 만년필과 허위 자백이 증거의 전부였지만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당시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 판사조차 “두고두고 후회스럽다”고 회고했다. 어디 이뿐이랴. 1970~80년대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은 예외 없이 불법 연행·구금에다 혹독한 고문과 강요된 자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그러나 재심 청구는 번번이 좌절됐고 되레 괘씸죄에 걸려 감형과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사법부는 물론 정부와 국회는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재심 요건으로 법제화하는 등 재심 문턱을 낮추는 제도 정비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과거 소극적인 법 해석으로 재심 청구가 기각된 이들의 구제 대책과 동시에, 피해자 대부분이 고령인 점을 감안한 신속한 재판도 필요하다.
강씨는 “고문은 용서할 수 있지만 검찰과 법정에서 느낀 절망감은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인권의 최후 보루에 대한 실낱 같은 희망이 철저히 짓밟힌 때문일 것이다. 사법부가 진정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는 길은 국가 폭력 피해자들한테 진실과 명예를 되찾아주는 것임을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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