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18 17:54
수정 : 2006.06.18 17:54
사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급격히 높아지는 형국이다. 미사일 발사 직후 미국이 공중 요격에 나설 거라는 관측에서부터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대북한 제재 강화와 6자 회담 사실상 폐기에 이르기까지 각종 시나리오가 무성하다. 모두 대결 심화와 사태 악화를 전제로 하는 건 물론이다. 2002년 말 2차 북한 핵 위기 때 미국의 북한 공습설까지 거론된 이후 3년 반 남짓 만에 다시 닥치는 악몽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거의 없다. 북한은 자위를 위해 미사일을 개발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북한과 같은 나라는 고도의 미사일 기술보다 긴장과 갈등을 잘 관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또한 북한은 미사일 발사가 불러올 장기간의 긴장과 고립을 감당할 만한 역량을 갖고 있지 않다. 적어도 미사일 수출에는 유리할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또한 착각이다. 발사 성공 여부도 불확실하거니와 미사일 수출 자체를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움직임이 힘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미사일 발사가 과거 몇몇 ‘벼랑끝 전술’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유효할 거라는 계산도 맞지 않다. 오히려 미사일 발사는 대화보다는 압박을 선호하는 조지 부시 행정부내 강경파와 군산 복합체에 명분을 제공하고, 공격적인 미-일 군사동맹을 강화시킬 것이다. 나아가 북한 핵 등 한반도와 관련된 모든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추진해 온 협상파에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은 미사일 발사 준비를 당장 중지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굴복을 강요하면서 6자 회담 재개를 위해 거의 노력하지 않는 것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미국은 지난 4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동북아 협력대화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의 만남을 거절한 데 이어, 북한의 지난 1일 힐 차관보 방북 초청도 즉각 거부했다. 6자 회담에서 모든 문제를 다룰 거라면서도 회담 재개를 위한 행동에서는 소극적인 이런 태도는 미국이 정말 회담에 관심이 있는지 의심하게 한다. 북한의 일방적 굴복을 기다리는 것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통해 미국 강경파를 굴복시키겠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에 대해 금융제재까지 하고 있는 터여서 더 쓸 카드도 많지 않다. 미국으로선 북한과 즉각 6자 회담 재개 협의를 시작하는 것이 최선이다.
국제관계에서 각 주체들이 불합리한 행동을 함으로써 위기를 심화시키는 경우가 적잖은 이유는 정세 판단에서 주관주의에 빠지거나 자신의 힘을 과신하는 데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준비는 양쪽에 모두 해당한다. 미국이 대북 압박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는 이번 사태 관련국 모두 현실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반세기의 한-미 동맹과 여러 해 쌓아온 남북관계가 위기 때는 무용지물이 된다면 뭘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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