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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약자의 호소를 들으라 |
혹한의 날씨에 한 해고 노동자가 대법원 정문 앞에서 20일째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복직’을 시켜달라는 것도 아니다. 해고무효 소송을 질질 끌지 말고 제발 좀 끝내달라는 것이다. 대법원이 소송을 무려 35개월째 계류시키며 판결을 늦추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서 상경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석진씨의 시위는 이번에도 메아리가 없을 것 같단다. 담당 대법관이 곧 퇴임하기 때문이다.
해고된 노동자가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는 곳이 법원이다. 김씨도 자기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현대미포조선에서 노조간부로 일하다가 1997년 해고된 김씨는 1, 2심에서 복직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김씨의 절박한 요구에 귀를 닫고 있다. 생계 위협에 놓인 해고 노동자 처지에서 복직 소송은 한시가 급하다. 그런 재판을 3년 가까이 끌어 피를 말리는 법원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강제 규정은 아니라지만 민사소송법은 상고심에서는 기록을 받은 날로부터 5개월 이내에 선고하도록 하고 있다. 대법원의 해고무효 소송 심리는 통상적으로 13개월 정도 걸렸다고 한다. 대법원 심리는 법률심으로, 사실관계에 대한 증거조사 등은 고등법원에서 끝난다. 회사 쪽에서 ‘참고 자료’ 등을 추가로 냈다고 하지만, 김씨 사건의 심리가 유독 늦어지는 이유는 납득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김씨 사건을 조속히 심리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도 문제를 제기했던 사안이다. 물론 판결은 법원의 고유 권한이지만, 사법 심판의 권능을 고무줄처럼 행사해서는 안 된다. 오죽했으면 담당 대법관과 가까운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회사 쪽의 변론을 맡으면서 이른바 ‘전관예우’ 탓에 심리가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하소가 나오겠는가. 사회적 약자인 해고 노동자의 절박한 호소를 대법원이 외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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