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29 19:37
수정 : 2006.06.29 19:37
사설
28년 전 전북 군산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김영남(45)씨 가족의 상봉과 김씨 기자회견이 납북자·국군포로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여든이 넘은 남쪽 어머니가 이제 중년이 된 아들을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은 쓰라린 한반도 현대사의 한 단면인 듯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남북 당국은 이번과 같은 상봉행사에 그치지 않고 납북자·국군포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역사적 책무를 지고 있다.
김씨가 회견에서 말한 내용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잖다. 그는 쪽배를 타고 표류하다 우연히 북쪽 배에 구조됐다는데, 이는 그의 납북에 관여했다는 전 북한 공작원의 증언 등과 큰 차이가 있다. 군사분계선과 멀리 떨어진 군산 근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이는 김씨보다 북한 당국이 소상히 밝혀야 할 대목이다. 김씨의 전 부인이자 역시 납북자인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가 94년 병원에서 자살했다는 설명도 충분한 증거로 뒷받침돼야 일본내 가족 등이 품고 있는 의혹을 풀 수 있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납북자·국군포로 26가족, 104명이 서로 만났으나 이번 김씨 가족 상봉이 특히 주목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북-일 수교교섭의 최대 걸림돌인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북한은 요코타의 유골을 2004년 11월 일본에 보냈으나 일본 정부는 한 달 만에 이 유골을 가짜로 판정하고 대북 공세를 강화해 왔다. 김씨의 이번 회견이 의문을 해소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도 납치자 문제의 해결을 바라고 있음을 확인시켜준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북한과 일본은 납치자 문제를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시켜 적대감을 부추기려 하기보다는 차근차근 합리적으로 접근하길 바란다.
더 중요한 것은 적어도 수백명씩에 이르는 남쪽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 해결 노력에서 전기가 될지 여부다. 남북 당국은 이제까지 이들과 남쪽 가족을 ‘특수 이산가족’ 범주에 포함시켜 제한적으로 상봉을 허용했으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회피하는 것으로 비판받아 왔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열린 제18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는 “전쟁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한 바 있다. 김씨 경우는 이 합의가 얼마나 지켜질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남북 당국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납북자·국군포로 문제의 해결 원칙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첫째는 인도적 요구 우선이다. 먼저 어떤 식으로든 모든 가족이 만나야 한다. 그러려면 정확한 실태 파악과 명단 작성을 위한 북쪽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자식의 생사 확인도 못한 채 나이 든 부모가 숨지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둘째는 당사자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거주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쪽이 원하는 고령 장기수를 북쪽에 보냈듯이 북쪽도 납북자·국군포로를 남쪽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셋째는 정치적 이용 배제다. 납북자·국군포로 문제를 상대방 체제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삼는 것은 오히려 사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진상 규명도 책임 추궁보다는 민족사의 불행을 극복하고 교훈으로 삼는다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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