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법원이 그제 경찰관의 반강제적인 임의동행에 응해 조사를 받다 달아난 용의자한테 도주죄를 물을 수 없다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 임의동행의 적법성을 엄격히 제한하는 한편, 그 절차적 기준을 명확히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임의동행은 피의자의 자발적인 의사가 객관적으로 명백해야 할뿐 아니라, 동행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물리적·심리적 압박이 없어야 하며, 언제든지 귀가할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적법하다고 재판부는 판시했다. 이런 기준과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면 강제연행이나 불법체포와 다를 바 없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현행 임의동행 규정이 사실상 ‘영장 없는 인신구속’에 해당하기 때문에 훨씬 더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중시했다. 불법적인 임의동행을 거부하다 경찰관에 상해를 입힌 것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는 판결(2001년)에 이어, 수사기관의 편의주의보다는 피의자 인권보호를 중시한 진일보한 판결이다.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상 임의동행 규정은 ‘전적으로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동행을 거부하거나 취소할 수 있는 권리’가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일선 수사기관에서는 범죄 혐의나 소지가 있는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는 사실상의 긴급체포 수단으로 이를 악용해 왔다. 심지어 목격자나 참고인까지 임의동행 형식으로 불러 조사하는 편의주의를 남발했다. ‘조사할 게 있다’ ‘경찰서에 가 보면 안다’는 식의 위력에 눌려 어쩔 수 없이 경찰관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 아닌가.
이번 판결을 두고 수사기관이 ‘도대체 어떻게 범인을 잡으란 얘기냐’고 항변하는 건 자신들의 수사력 부재를 고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임의동행이 남용되는 이유는 인신 구속과 자백에 의존하는 수사 관행 탓이 크다. 용의자가 출석 요구에 불응하면 증거를 통해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시급하면 긴급체포하면 된다. 별다른 증거도 없이 혐의나 심증만으로 일단 잡아놓고 추궁하겠다는 편의적 발상을 범인 검거나 범죄 예방을 위한 것으로 호도해선 안 된다.
이번 판결은 법에 정해진 절차조차 지키지 않는 수사 편의주의적 관행에 다시 경종을 울린 것이다. 기존의 수사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물론,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관련법 규정도 엄격히 강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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