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14 19:52
수정 : 2006.07.14 19:52
사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본협상이 마지막날 일정을 취소하는 파행 속에 끝났다. 건강보험 약값 책정 적정화 방안을 철회하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국 쪽이 판을 깼다. 미국의 강경하고, 보기에 따라서는 오만한 통상협상 자세가 읽힌다.
협상 일정 중 하나가 파행으로 끝났다고 해서, 반기거나 낙담하기는 이르다. 샅바싸움이 있고, 때로는 벼랑끝 전술도 나오는 게 협상이다. 다만 두 가지는 확인했다. 의약품·농업·섬유·자동차·개성공단 문제 등에서 미국의 높은 벽을 실감한 게 첫째다. 둘째는 우리 협상단이 걱정했던 것보다는 문단속에 신경쓰고 있다는 점이다. 의약품만 아니라 18개 분과와 작업반 대부분에서 미국이 바라는 것을 쉬 내놓지 않는 분위기였다는 협상단 관계자의 말도 이런 흐름을 읽게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국민의 걱정과 반대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게 영향을 줬지 않나 싶다.
2차 본협상 파행은,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안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주도해온 쪽에서 보면 사단이다. 차질이 생겼으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돌아봐야 한다. 매달려서라도 뜻을 관철시키려는 건 가장 경계해야 할 자세다. 근본 원인은 준비없이 협상에 나선 과욕과 성급함에 있었다. 미국의 요구 수위를 미리 점검하지 않고, 국민의 생각을 먼저 묻고 들어보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결과다. 그랬더라면 섣불리 덤비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시 점검해 봐야 한다. 미국 일정에 맞춘 시한을 넘겨 협상이 몇 년 걸릴 수 있고, 접점을 찾기 어려우면 협상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도 유력한 시나리오에 포함해 둬야 한다. 비록 늦었지만 국민의 뜻을 제대로 묻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국민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진행한다는 원칙 아래 이해 관계자와 지속적으로 대화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식의 무늬만 대화여서는 안 된다. 협상 초안의 뼈대를 공개하지 않고서는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 제대로 된 토론이나 의견 수렴이 이뤄질 수 없다고 본다. 미국과 초안을 3년 안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지만, 적어도 미국이 의회나 통상정책협상 자문위원회에 알리는 수준 만큼은 우리도 내용을 밝히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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