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20 19:45
수정 : 2006.07.20 19:45
사설
그제 서울 잠실의 4층짜리 상가 건물에서 불이 나 8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사람들이 한창 활동하는 낮 시간이었고 불도 30분 만에 진화됐는데도 너무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희생이 커진 건 3~4층에 있는 고시원의 폐쇄적인 구조와 미흡한 소방시설 때문이다. 사망자 대부분은 발화 지점인 지하에서 올라온 유독가스에 질식사했다. 중앙계단은 화염이 치솟는 통로 구실을 했고, 비좁은 복도와 방범창 달린 창문은 탈출구가 되지 못했다. 비상구와 스프링클러는커녕 그 흔한 소화기와 비상 손전등 하나 없었다. 고시원은 지난해 소방 점검에서 방염·내장재와 비상등 설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개선하지 않았다. 업주의 안전 불감증과 당국의 안이한 감독이 피해를 키운 것이다.
어디 고시원뿐인가. 유흥업소는 물론이고 찜질방, 피시방, 노래방 등 다중 이용시설 상당수는 폐쇄적인 내부 구조에 인화성 물질로 가득차 있다. 얼핏 보기에도 ‘여기서 불이 나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이 드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이들 시설은 대개 한 상가 건물에 밀집한 경우가 많아 작은 불에도 큰 인명 피해가 우려되지만, 자유업으로 분류돼 있어 정작 화재 안전 기준은 느슨하기 짝이 없다. 소방시설 기준을 강화한 소방법 개정안은 업주들의 반발에 밀려 내년으로 시행이 연기됐다. 화재 안전에 관한 한, 업주의 책임을 엄정히 물을 법적 기준도 없이 사실상 방치돼 있는 셈이다. 비용 부담을 꺼리는 업주들의 반발 때문에 법 시행을 미적거린 당국 또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이런 희생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내년 3월 시행 예정인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역시 사업주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당국은 해당 건축물에 대한 화재 위험 평가를 통해 사용정지 명령까지 내릴 수 있게 돼 있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이 업주들의 이익에 희생되는 일이 또다시 빚어져선 안 될 것이다.
화재 사고는 갈수록 초기 진화와 인명 구조가 중요해지는 추세다. 이번 불도 불길은 쉽게 잡았지만 초기 구조활동이 미흡해 인명피해가 컸다. 주민들이 서둘러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면 희생은 더 컸을 것이다. 모두 질식사한 뒤에 불만 끄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화재 진화에 초점을 맞춘 소방 기능도 재점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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