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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23 20:52 수정 : 2006.07.23 20:52

사설

독재 시대에 벌어지던 ‘파업 대책 기관장 회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포항건설노조가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기 전날인 지난 12일 포스코 관계자가 포항시장을 만났고, 이어 13일엔 시장 주재의 ‘지역안정 대책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노동부 관계자, 지역 경제계 인사, 지역 언론사 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 소식은 사진과 함께 지역 언론을 통해 버젓이 보도됐다.

이번 회의엔 독재 시대처럼 검찰과 경찰, 정보기관 등이 참여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모임이 용납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노사 문제는 당사자들의 자율적 교섭이 첫번째 원칙이기 때문이다. 객관적 위치에 있지 않은 제3자의 개입은 그 자체로 한쪽 편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게다가 이런 개입이 상대적으로 강자인 사용자 쪽을 편들려는 것이라면 더욱 공정하지 못하다.

이번 회의의 참석자 구성을 보면, 객관적인 중재 노력이라고 볼 여지가 없다. 노사간 중재를 맡아야 할 노동부 관계자가 사용자 쪽인 경제계 인사들과 대책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모임의 편파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객관적 중재를 모색하는 자리였다면 노조 쪽과 대화가 가능한 시민·사회단체도 참석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와 별도로 포스코는 건설노조가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기 한참 전부터 우호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주 말 공개된 내부 문건에는 포스코에 우호적인 기고문이나 사설 등이 구체적인 언론사 이름과 함께 나열돼 있었고, 얼마 뒤 제목까지 똑같은 글들이 문건에 거론된 언론에 실렸다고 한다. 이것이 단지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번 사건은 정부와 언론, 기득권 세력이 어떻게 연결돼 노조를 압박하는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아마도 언론의 구실이 더 커진 점일 것이다. 민주화 시대엔 정부의 노골적 탄압보다는 파업에 비판적인 여론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니, 파업의 근본 원인인 불법·편법 하도급 문제를 지적하는 언론을 찾기 어려운 건 어쩌면 당연하다. 정부가 진정으로 노사관계의 안정과 발전을 원한다면, 이번 대책회의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정부가 사용자와 한편이라는 노동계의 불신은 날로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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