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25 20:51
수정 : 2006.07.25 20:51
사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미국 실패’ 발언을 두고 벌어지는 공방을 보면 우리나라 외교가 왜 취약한지를 실감하게 된다. 외교는 분명 국익을 최우선으로 놓고 국력을 모아야 최대한의 성과를 거두는 법인데, 본질적이지 않는 공방에 더 신경을 쓰니 한심한 노릇이다.
먼저 지적할 것은 이 장관의 진중하지 못한 태도다. 물론 “(북한이 미사일 발사로) 가장 위협하고자 한 나라가 미국이라면 논리적으로 미국이 제일 많이 실패한 것”이라는 그의 지난 23일 발언이 사실에 어긋나는 건 아니다. 북한의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 방북 초청을 일축한 미국에 대한 비판도 담겼을 터이다. 그는 21일에도 “미국이 하는 것이 다 국제사회가 하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풀기 위해 관련국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때에 ‘나라별 실패의 크기’를 따지는 발언을 한 것은 경솔하다. 우리는 적게 실패해서 괜찮다는 건가? 자신의 책임을 줄이고자 이런 발언을 했다면 더더욱 부적절하다. 더구나 그는 한-미 사이에 이견을 앞장서 해결해야 할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장이기도 하다.
여야 의원들의 태도는 더 큰 문제가 있다. 몇몇 한나라당 의원은 이 장관 발언이 나오자마자 그의 사퇴를 요구했다.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한-미 동맹의 위기를 조장한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공세는 북한 관련 문제의 복잡한 성격을 도외시하고 발언 내용을 입맛에 맞게 재단하고 있는 점에서 무책임하다.
대북 포용-압박, 친미-반미라는 단순화한 기준으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도 우리 외교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야를 막론하고 적어도 외교·안보 사안에서는 단기적 정치 이익을 추구하는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한국 장관이 ‘그 정책은 미국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하면 안 되느냐”라며 이 장관을 옹호한 것도 적절하지 않다. 지금은 이런 비본질적 공방을 이어가기보다 효과적인 대북 정책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미국과 이견을 조율해야 하더라도 될수록 큰 소리 내지 않고 하는 게 동맹 정신에 맞다. 국내에선 말꼬리 잡고 공방을 벌이다가 정작 중요한 국제 공조와 정책 일관성 유지는 소홀히하지 않을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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