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26 18:15
수정 : 2006.07.26 18:15
사설
지난해 7월 국정원 도청 사실이 폭로된 뒤 두 전직 원장과 차장 한 사람이 구속됐고 다른 차장 한 사람은 자살했다. 수감된 김은성 전 차장의 셋째딸은 결혼한 지 채 한 달도 안 돼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개인을 떠나 국정원 전체의 비극이다. 죄는 밉지만, 잇따르는 비극을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도 아프기만 하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도청 사실이 폭로되고 한 달 뒤 국정원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것, 여당이 국정원개혁기획단을 구성한 것, 국회가 정보위원회 아래에 국정원개혁소위를 둔 것이 고작이다. 말뿐이지 실제 변화는 하나도 없었다. 제도 혁신을 이끌어가야 할 열린우리당은 당론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국회의 국정원개혁소위는 공청회 두차례를 연 것이 전부다. 휴대전화 도청 의혹을 앞장서 제기했던 한나라당은 먼산만 바라보고 있다. 여당이 미적거리는데 앞장설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정치권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국정원은 지난달 일부 조직을 개편하면서 변칙을 부렸다. 조직 진단 결과에 따라 감사실과 감찰실을 통합했다. 그러나 특별한 수요도 없는 대테러보안국을 대테러국과 보안국으로 분리해, 전체 국·실 수를 원위치시켰다. 게다가 퇴직을 앞둔 2급 간부 3~4명을 1급으로 변칙 승진시켰다.
국민에겐 불안, 국정원 자신엔 불행을 뜻하는 개혁의 후퇴는 전적으로 정부·여당의 책임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월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국정원의) 제도 개혁은 그만 하면 됐다’고 말했다. 사람과 관행만 바꾸면 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이러니, 여당은 서두를 게 없다. 수사권 폐지, 국내·해외 파트 분리 등 골치아픈 쟁점에 머리 싸맬 이유가 어디 있을까. 최근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이 국정원법 개정안을 28일 발의하겠다고 한 것은 지리멸렬한 여당의 속사정을 상징한다. 여권 전체가 전력투구를 해도 힘든 사안을 몇몇이 하겠다고 나섰으니, 그 심정 알 만하다.
현정부로선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제도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정원과 국민의 불행은 되풀이된다. 김은성 차장의 셋째딸은 이런 메모를 남겼다. 자신의 죽음으로 하여 ‘아빠가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잠시 ‘귀휴’ 나왔던 아비는 통곡만 하다가 구치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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