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27 19:47
수정 : 2006.07.28 07:42
사설
“(다음 대선에서는) 누가 되는 것보다 정권교체가 잘 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는 발언의 뜻은 아주 간단하다. 현정권이 재집권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국민이 믿을 곳은 한나라당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잘해 달라”고 했으니, 정권교체의 주역은 한나라당이어야 한다. 성직자가 할 말이 아니다.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장이나 할 소리다.
김수환 추기경이 정치적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최근 몇 해 동안은, 잊힐 만하면 정치 발언을 던져 집중조명을 받곤 했다. 그것도 매번 한나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였다. 2004년 박근혜 대표 방문 때는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의견을, 지난해엔 사학법 개정 반대 뜻을 밝혀 한나라당을 두둔했다. 탄핵정국 때는 촛불시위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성직자라고 현안에 대해 입을 다물라는 법은 없다. 인간을 억압하는 제도와 권력을 두고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게 성직자다. ‘하늘의 의로움’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인권을 억압해온 국가보안법 폐지나, 사학의 부패를 예방하기 위한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을 하늘의 의로움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번 발언은 아예 ‘정치인 김수환’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한나라당에 대통령 후보가 여러 명 있어 불안하다. 지난번 경선 불복종 사태도 있었으니 각 후보가 정권교체를 더 중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파장을 우려한 서울대교구는 즉각 ‘비공개 면담에서 나눈 덕담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며 강하게 유감을 표시했고, 한나라당은 군소리 없이 사과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김 추기경과의 면담 내용은 오히려 공개가 관례였다.
침략자 로마에게 세금을 내야 하느냐는 물음에 예수는 동전에 새겨진 시저의 얼굴을 가리키며 이렇게 답했다.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로!’ 정교 분리의 원칙이 있었기에 세속법과 충돌할 때에도 교회법은 존중받았고, 성직자는 교회법을 지킬 수 있었다. 성직자가 정당 대변인 구실을 한다면, 교회는 존중받을 수 없다. 세상의 구원을 운위할 수도 없다. 한나라당 대변인은 “우리 나라는 종교와 정치가 엄연히 분리돼 있는데 종교 지도자가 한 정당을 지지할 수 없는 일이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했다. 해명 삼아 한 얘기인데, 새겨들어야 할 이는 김 추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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