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28 19:20
수정 : 2006.07.28 19:20
사설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몇 해 전 큰 반발에 부닥쳐 포기했던 인터넷 실명제를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 대형 포털과 온라인 언론에 이용자 본인 확인 장치를 두도록 법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또 글 내용에 다툼이 있거나 피해자가 요청하면 서비스 업체가 글을 임시로 차단할 수 있게 허용할 방침이라고 한다.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희생해 명예훼손 따위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는 통제 만능주의적 발상으로, 자유로운 소통이라는 인터넷의 본질을 크게 훼손한다.
인터넷 실명제를 고집하는 정부와 정치인들의 말을 들으면, 마치 지금 인터넷이 무법지대이고 명예훼손 따위에 대처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지금도 인터넷에서 불법 행위를 한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추적되고 처벌받는다. 아이피(IP) 주소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포털은 회원 가입 때 주민번호를 확인하고 있어 아이피 주소 추적이 필요 없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인터넷 실명제 법제화의 진짜 효과는 ‘사전 위협’ 효과다. 잘못을 저지르면 곧바로 걸린다고 확실히 겁주는 것이다. 문제는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가 아닌 건전한 비판 글을 쓰는 이들도 움츠러들게 한다는 점이다. 비판 위축은 말할 것도 없다. 인터넷 게시판의 주된 비판 대상은 정부와 정치인이다. 그래서 왜 이들이 실명제에 집착하는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가 되는 글은 서비스 업체가 임시로 차단할 수 있게 허용하겠다는 것도 아주 위험하다. 서비스 업체에 공식적인 검열 권한을 주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비판 대상이거나 글에 언급된 사람이 요청만 하면 글을 차단할 수 있게 한다는 건, 법원의 보도 금지 가처분 결정 권한을 행정기관에 넘겨주는 것에 견줄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위헌적 발상인 것이다.
인터넷에서 필요한 건 실명제가 아니라 주민번호 사용 금지다. 요즘 가장 심각한 사생활 침해 사건은 주민번호 유출과 도용이지, 인터넷 댓글이 아니다. 게다가 실명제를 해도 주민번호를 도용하면 헛일이다. 정부와 여당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실명제를 철회하고, 인터넷에서 주민번호를 쓰지 못하게 하는 한편,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없는 본인 확인 대체 수단을 하루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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