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04 19:34
수정 : 2006.08.04 19:34
사설
몇몇 은행이 비정규직 차별이 법으로 금지될 때를 대비해 새로운 직군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만을 별도 직군으로 묶어 고용은 보장하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 뼈대다. 일선 창구업무 같은 일을 이들의 전용 업무로 만들고 직군까지 분리함으로써, 정규직과의 비교를 불가능하게 하자는 게 취지다. 이렇게 되면 비정규직 차별을 주장할 근거가 사라진다. 이런 조처가 확산되면 노동자들은 정규직, 준정규직, 비정규직 등 세 가지로 나뉘게 될 것이다.
현재 주요 은행의 비정규직은 전체 직원의 30% 정도다. 이들은 주로 일선 창구 또는 고객센터에서 일하는데, 이런 일은 숙련도가 필요하고 상황 변화에 따라 사라질 수 있는 업무가 아니다. 노동의 유연성이 아니라 비용을 절감하려고 비정규직을 쓴다는 얘기다. 이런 비정규직 남용이 물론 은행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정규직이 겪는 대표적인 고통은 임금 차별과 고용 불안이다. 은행들의 새로운 직군제도는 고용 불안을 해소해 준다는 점에선 분명 진전이다. 비정규직의 임금을 하루아침에 정규직 수준으로 올리라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다. 하지만 차별을 구조화하고 영구화한다는 점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은행 비정규직의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보면, 과거 논란이 됐던 ‘여행원 제도’가 새롭게 살아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런 제도가 눈앞의 고민을 해결해 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론 상당한 불안 요인이 된다는 걸 은행들은 알아야 한다. 필수 업무 일부를 전적으로 준정규직에게 맡긴다는 건, 그들이 조직적 반발로 전체 업무에 차질을 줄 힘을 얻는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을 위해서도 준정규직의 임금을 단계적으로 올려주고 실적이 좋으면 다른 직군으로 옮겨갈 길을 열어주는 등 직원 사이 격차를 줄이는 게 이롭다. 비슷한 제도를 고려하는 다른 기업들도 명심해야 할 점이다.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는 것은 빈부격차를 줄이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볼 때 기업에도 불리하기만 한 건 아니다. 최근의 실증적인 연구 결과는 무분별한 비정규직 사용이 결국 ‘저임금 저생산성’ 구조를 낳는다는 걸 보여준다. 비정규직 축소를, 생산성 향상을 통해 고부가가치 기업으로 체질을 바꾼다는 측면에서 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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