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08 18:24
수정 : 2006.08.08 18:24
사설
요즘 언론이 가장 줄기차게 보도하는 사안은 단연 한 프랑스인 집 냉동고에서 발견된 두 갓난아기 사건이다. 지난달 23일 아기들의 주검이 발견된 이후 두 주 넘도록 사건을 생중계하다시피 한다. 조금만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 경찰은 언론에 고스란히 알리고 언론들은 추측까지 덧붙여서 미주알 고주알 보도한다. 사회의 얄팍한 호기심을 채워주느라 관련자들의 사생활은 안중에도 없다. 실명을 거론하지 않는다고 이런 보도가 용납되는 건 아니다.
그동안 언론이 쏟아낸 추측과 의혹들은 한둘이 아니다. 사건 직후 집 주인의 친구와 가정부에 의혹이 쏠리더니, 이내 이 집을 드나들던 한 소녀가 부각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유전자 검사 결과 집주인이 아이들의 아버지라고 결론내자, 그 주변의 몇몇 여성들까지 들먹여졌다. 아이들의 친모로 지목된 여성이 어떤 수술을 받았다는 것마저 서슴없이 공개됐다. 선정적인 기사로 독자를 끌려는 언론, 그리고 언론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수사 실적을 부각시키려는 경찰이 합작한 결과다.
충격적인 범죄의 진상을 밝히고 그 내용을 사회에 알리는 건 경찰과 언론의 기본 기능이다. 하지만 인권과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도 경찰과 언론의 중요한 책임이다. 본분을 망각한 채 추측으로 얼룩진 ‘괴담’을 확대 재생산하는 게 과연 어떤 사회적 이득이 있는가? 시민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정보를 신속하게 알려줘야 하는 연쇄 살인사건 같은 성질의 일도 아니잖은가. 이제라도 경찰과 언론은 무분별한 폭로와 보도를 그만둬야 한다. 경찰은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는 정보를 공개하지 말아야 하고, 언론도 보도를 자제하는 게 옳다. 단 한 번의 보도만으로도 당사자들은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본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당사자를 배려하지 않는 무분별한 사생활 공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주목받을 만한 사건이 벌어지면 언론들은 벌떼처럼 몰려들어 사건과 관련 없는 개인사까지 마구 파헤쳐 왔다. 대상도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흉악범이든 가리지 않는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에겐 더욱 가혹하다. 비판을 받아도 그 때뿐이다. 이는 언론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격이다. 바닥까지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언론은 반성하고 바뀌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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