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10 21:13
수정 : 2006.08.10 21:13
사설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미국 쪽 요구대로 서둘러 밀어붙인 정황과 사실이 여럿 확인됐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어제 공개한 대외경제위원회 문건과 자료에서다. 지난해 11월 작성된 내부 문건을 보면, 정부가 미국의 협상 기한에 맞춰 내년 3월 타결을 목표로 협상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국내 공청회를 협상 개시 선언 이후로 미루는 방안을 검토한 사실이 적혀 있다. 대외경제위원회는 대통령과 관련 부처 장관들이 참석해 대외 경제전략을 총괄적으로 논의·결정하는 기구다. 이런 기구에서 ‘미국내 절차와 균형’을 이유로 대통령 훈령으로 정한 국내 여론수렴 절차를 공공연히 무시한 것이다. 정부는 “협상 시한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 또한 애초 의도와는 달랐던 셈이다.
미국이 요구한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수용한 사실도 확인됐다. 위원회는 지난해 9월 “4대 선결조건 해결 없이는 협정 추진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올 10월까지 해결 추진”이라고 못박았다. 정부는 그동안 “통상 현안일 뿐 협정과 연계해 미국에 양보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변해 왔다. 지난해 중국이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국내외적 민감성’을 들어 미국과의 협상을 서두른 정황도 새롭게 드러났다. 중국이 실제 협정 체결 의지가 있었는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정부는 미국의 반발 때문에 ‘중국 카드’를 협상 전략으로 활용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순전히 경제적 차원에서 결정한 문제’라는 지금까지의 설명 역시 반쪽 진실이었던 셈이다.
일방적인 협정 추진을 걱정하는 이들은 정부의 협상 태도가 바뀌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제 노무현 대통령의 회견을 보면, 과연 반대 목소리에 귀기울일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대통령은 ‘미국과 실전을 치른 다음 중국을 상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농업 등 피해 부문은 ‘살아 남으면 좋고 아니면 정부가 보상해주면 된다’는 식의 발언도 했다. 개방과 경쟁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도 문제지만, 주류 학자들조차 버거운 상대라는 미국을 우리의 몸풀기 대상으로 여기는 건 위험천만이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말대로 “자유무역의 이상을 신봉하는 이들은 그 부작용을 가볍게 여긴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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