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4부가 어제 국정권(옛 안기부) 도청 녹취록인 ‘안기부 엑스파일’ 내용을 보도한 이상호 〈문화방송〉 기자에게 검찰의 1년 실형 구형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자유와 사생활 보호(통신비밀)가 충돌할 때 어느 선까지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를 밝힌 첫 판례다.핵심적인 내용은, 통신비밀에 관한 내용이라도 보도 동기나 목적·수단·방법이 정당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될 때는 공익을 위해 이를 보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런 보도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인격권의 침해는 감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녹취록 전문을 보도했던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에 대한 선고유예가 말해주듯 제3자의 사생활 공개 등 무분별한 보도는 어느 정도 제한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익과 사익의 균형을 잘 유지하면서도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 자유의 폭을 크게 넓힌 전향적인 판결로, 크게 환영한다. 이로써 엑스파일에 대한 추가 보도도 가능하게 됐다. 활발한 후속 보도를 기대하며, 그동안 꿋꿋하게 싸워온 이 기자와 언론단체 관계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와 함께 불법으로 수집된 내용을 수사 자료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이른바 검찰의 ‘독수독과론’은 법적 타당성이 더욱 의심받게 됐다. 검찰은 지난해 말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등 삼성 엑스파일 관련자 전원에게 무혐의 결정을 내렸으며, 나머지 도청 테이프 274개에 대해서는 불법행위의 결과물인 만큼 그 내용을 수사하지도 공개하지도 않는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문제의 테이프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정당하게 된 마당에 범죄를 수사해야 하는 검찰이 테이프를 덮어두자는 것은 설득력이 없게 됐다. 더구나 그 테이프에는 고위 경제인과 정치인·검찰·언론 등 힘있는 집단이 유착해 뇌물을 제공하는 등 기본 법질서를 흔드는 중대하고도 명백한 범죄 혐의로 가득차 있다고 하지 않는가. 검찰은 당장 삼성 엑스파일 재수사와 함께 나머지 도청 테이프의 내용에 대한 전면 수사에 나서길 바란다. 국회도 검찰이 보관 중인 엑스파일 테이프 공개를 위한 법률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아울러 지나치게 엄격한 처벌만 규정하고 있는 통신비밀법의 손질도 불가피하게 됐다.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