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13 18:03
수정 : 2006.08.13 18:03
사설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 경질의 파장이 예사롭지 않다. 경질 과정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청와대는 도덕적으로나 자질면에서 치명상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청와대 참모들이 작은 공공기관의 사소한 인사까지 개입하려 했다. 문제가 됐던 〈아리랑 티브이〉 부사장직은 둬도 그만, 안 둬도 그만인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 청와대 홍보수석과 비서관이 잇따라 특정 인사를 거명했다. 그것이 협의인지 청탁인지 아니면 압력인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임명된 지 불과 6개월 만에 직무태만이라는 이유로 바꿨다. 차관쯤은 아무 때나 바꿀 수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검증절차의 치명적 결함을 인정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차관 이전의 직무까지 거론하는 대목에선 기가 막힌다.
더 큰 문제는 청탁 거부에 대한 보복 경질 여부다. 아직은 양쪽의 주장이 맞서고 있다. 그러나 부처 공무원과 시민의 심증은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 청와대는 유씨에게 직무태만이란 혐의를 씌웠지만, 그는 부처 안 다면평가에서 줄곧 상위권을 달려왔다. 청와대도 껄끄럽긴 하지만 그만한 대안이 없어 6개월 전 차관에 기용했다.
노 대통령은 최근에만 김병준 교육부총리 및 새 법무장관 인선 파문을 겪었다. 그 와중에서, 인사권은 임기 말 대통령의 마지막 권한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런 인사권이 참모들에 의해 청탁과 보복의 수단으로 변질됐다면, 노 대통령은 이제 달리 기댈 것도, 할 일도 없다. 그만큼 이번 사태는 심각하다. 노 대통령은 조속히 그리고 명쾌하게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내용이 간단한 만큼 시비도 쉽게 가려질 수 있다. 첫째 유씨의 직무태만 여부는 올해 신문유통원에 배당된 예산 100억원의 집행을 미룬 책임자를 가리면 된다. 문화부인가 기획예산처인가. 둘째 보복 여부는 청와대 민정비서실의 유씨에 대한 조사 내용을 공개하면 된다. 민정비서실 쪽은 직무태만을 조사했다고 하고, 유씨는 인사문제를 주로 조사하더라고 했다. 셋째, 비서관들이 공공기관 인사에서 특정인을 거듭 거명하는 것이 청탁인지 협의인지는 유관기관에 유권해석을 맡기면 될 일이다. 그리고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한 일이 아니라면, 앞으로 해명은 대변인이 아니라 당사자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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