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14 20:18
수정 : 2006.08.14 20:18
사설
3년 전 한 사회복지법인 직원들이 파업을 했다. 왜 자신들이 농사일을 해야 하는지, 정부 지원금은 어디에 쓰이는지 공개할 것을 재단에 요구했다. 돌아온 건 노조원 19명의 무더기 해고였다. 재단 이사장을 횡령 혐의로 고발했지만 무혐의로 처리됐고, 관할 구청의 감사도 무사통과였다. 이사장의 비리 혐의는 지난 6월에야 들통났다. 수십억원의 국고 보조금과 장애인 생계비를 떼먹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빼돌린 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하고 자식의 유학비를 댔다.
그런데 이사장은 구속 직전 자신의 친구와 아들을 각각 이사장 대행과 이사로 선임했다. 비리에 연루된 이들은 여전히 시설 책임자로 있고, 횡령을 방조한 이사진도 그대로다. 재단 운영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노조원들은 다시 머리띠를 두른 채 이사진 해임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다. 한해 100억원이 넘는 국고보조금을 받는 국내 최대 사회복지법인 성람재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성람재단 사태는 현실과 동떨어진 장애인 행정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관할 종로구청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구실을 못 했다. 비리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후속 감사와 엄정한 행정 조처에 나서기는커녕, “다른 이사진은 법적 책임이 없고, 비리 혐의자도 확정판결이 나면 조처하겠다”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전형적인 복지부동이 아닐 수 없다.
사회복지시설 관리·감독권은 보건복지부가 서울시에, 서울시가 다시 관할 구청에 위임한 것이다. 문제는 이 재단의 사무실은 서울에 있지만, 13개 시설은 모두 지방에 있다는 점이다.
애초부터 실질적인 관리·감독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다.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이 감독 사각지대를 낳은 것이다. 그런데도 복지부와 서울시는 ‘모든 책임과 권한은 구청에 있다’며 팔짱만 끼고 있다. 스스로 책임져야 할 중대 업무까지 일선에 위임하는 건 행정의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다.
최대 사회복지법인의 비리가 이런 식으로 처리된다면 다른 곳은 어떠할지 능히 짐작이 간다. 실질적인 감독권이 미치지 않으니 비리의 싹이 근절되지 않고, 비양심적인 재단의 전횡과 인권침해가 끊이질 않는 것이다. 독립적이고 일상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장애인들의 호소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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