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8.15 19:47 수정 : 2006.08.15 19:47

사설

어제는 서글프고 통탄스런 날이었다. 동아시아에서 과거의 잘못된 역사의 원점을 되새겨보고 신뢰를 쌓아가는 다짐을 하는 날이어야 할 8·15가 한 일본 정치인의 철부지 행위로 난장판이 돼 버렸다. 현직 총리로는 21년 만에 8·15 참배를 밀어붙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참배 행위를 생중계하던 일본 텔레비전 방송사의 보도에는 9월 퇴임을 앞둔 그의 ‘결단’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결단이란 말인가. 그의 외곬진 행동에는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의 직접 피해자는 말할 것도 없고, 동아시아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 그저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우매한 아집의 덩어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2001년 4월 총리직에 오른 그는 전후 일본에서 사토 에이사쿠, 요시다 시게루에 이어 세 번째로 장수한 총리로 기록될 것이다. 파벌정치의 타파와 구조개혁 등의 구호를 내걸고 일본 사회의 무사안일, 정체 기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재임기간 내내 인기몰이에 성공한 정치가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야스쿠니 문제로 들어가기만 하면 편협하고 고집불통의 폐쇄회로에서 헤어나지를 못해 인간적으로 연민의 마음마저 든다. 고이즈미는 언제 참배를 하더라도 한국과 중국이 비난을 할 것이기 때문에 8·15가 적절한 날이었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시기가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 그 자체에 있다. 야스쿠니 신사가 무엇인가. 메이지유신 이래 일왕의 이름으로 벌어진 전쟁에서 숨진 군인들을 군신으로 받드는 군국주의의 상징이 아닌가. 게다가 종전 후 도쿄군사재판에서 에이(A)급전범으로 심판받은 범죄인마저 합사해 두고 추앙하는 곳 아닌가. 아무리 일본의 집단적 역사의식이 유별나고 뒤틀렸다고 해도 이런 행위가 국제사회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 일이다. 유럽에서 아돌프 히틀러나 베니토 무솔리니의 핵심 측근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정례적으로 추모행사를 벌이는 일이 현실화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 지역의 홍역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일본 사회의 진지한 노력이 부족한 점에도 아쉬움을 느낀다. 고이즈미 총리의 제멋대로 행보에 따라 동아시아의 정상회담 통로가 막힌 지도 제법 오래됐다. 원래 야스쿠니 문제는 논란의 불씨가 엉뚱한 방향으로 튈 수 있는 나라 사이 대립 또는 민족주의적 정서의 충돌 구도가 아니라, 일본인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성격의 사안이다. 1개월 앞으로 다가온 집권 자민당의 차기 총재 선출과정에서 야스쿠니 해법을 놓고 대토론이 벌어지기를 기대했으나, 아베 신조 관방장관의 독주태세가 굳어지면서 토론 마당조차 정비되지 않은 것은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다. 전후 이룬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과거의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할 용기를 갖추지 못한 일본 사회의 한계로 판단돼 안타깝다. 그렇지만 일본 사회의 자폐증적 요소가 앞으로 총리 등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합리화하는 핑계가 될 수는 없다.

고이즈미의 8·15 참배는 화려한 제스처와 단순논법으로 흥행을 이어간 이른바 ‘고이즈미 극장’의 종막극에 비유된다. 그가 마지막 무대에서 한 행위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임기 안에 자신의 공약을 지켰다는 환각 속에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터를 망가뜨리려고 돌진한 ‘가미카제’(자살특공대)로 보인다. 그의 무모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묻기 위해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반성의 뜻을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 정부는 국내 입국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국제사회의 여론을 계속 환기해서 일본 지도자들의 야스쿠니 망동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