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17 21:38
수정 : 2006.08.17 21:38
사설
강원룡 목사가 어제 타계했다. 이 땅의 평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또 한 분의 어른을 보내는 이들의 마음은 그저 황망하다. 그는 일본 메이지학원 영문학부와 미국의 뉴욕 유니언신학대를 졸업한 전형적인 개신교 엘리트였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핍박받는 겨레, 소외된 이들의 곁에 있었다. 그가 몸 바쳤던 교회 갱신과 사회 개혁은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운동은 일쑤 한 극단을 선택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그는 대립하는 것의 중간을 택했다. 회색분자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대화를 통한 상호 이해 없이는 어떤 갈등도 해결할 수 없다고 그는 믿었다. 이는 스승인 신학자 폴 틸리히나 라인홀드 니버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그가 유학에서 돌아오자마자 1959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기사연)를 설립한 것도 대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였다. 65년엔 사단법인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설립해, 남녀·빈부·종교·노사 등으로 대화모임을 크게 확대했다.
이 가운데 6개 종단의 대화모임은 종교간평화회의로 발전했다. 그러나 그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이었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병폐를 주제로 삼았던 60년대를 지나 7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인간화를 대화의 주제로 삼았다. 이념과 체제, 권력과 민중, 노시와 농촌, 기업가와 노동자 사이의 분열은 이미 한국사회를 치명적으로 병들게 하고 있었다. 그후 크리스찬 아카데미는 양극화 극복을 위해 중간 매개집단 교육에 집중했다. 이때 참여했던 이들이 지금의 한명숙 총리,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 이우재 국회의원, 김세균·장상환 교수 등이다. 최순영 국회의원(와이에이치무역), 이총각(동일방직) 박순희(원풍모방) 이영순(콘트롤 데이타)씨 등 70년대 노동운동의 주역들이 당시 수강생이었다. 79년4월 유신정권은 이들을 포함해 활동가와 수강생 137명을 빨갱이로 몰아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을 조작해, 유신의 황혼을 장식하기도 했다.
강 목사는 대화를 ‘오래된 새 길’이라고 했다. 그 정신은 종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의 화육정신에 비교했다. 차별없이 사랑하고 관용하는 것만이 오늘의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가 이 땅에 그 길을 열어놓고 떠난 오늘, 그 의미가 더욱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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