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21 20:12
수정 : 2006.08.21 20:12
사설
대통령의 뒤늦은 지시에 따라 당국이 도박형 성인오락에 대한 전방위 사정에 나섰다. 감사원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허가 과정, 문화부의 경품용 상품권 도입 과정 등에 대한 직무감사에 착수했고, 검찰은 자금 흐름, 지분 관계, 로비 여부 등 오락기 제조·유통업체에 대한 수사와 경품용 상품권 제도 도입 및 업체 지정과정에서 정치권의 압력 행사나 금품 수수 의혹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여당은 즉각적이고 단호한 수사를 촉구하고, 야당은 특별검사제나 국정조사권 발동을 검토하느라 부산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며 호들갑 떠는 꼴이 착잡하기만 하다. 지난해 오락실 도박이 게임업소를 휩쓸 무렵, 〈한겨레〉는 영등위의 부실 심사와 부정 의혹, 경품용 상품권의 문제를 상세히 보도한 바 있다. 시민단체 흥사단도 경품용 상품권 인증심사 과정의 특혜 및 비리의혹을 제기하며 감사원에 시민감사 청구서를 제출했다. 국회 문화위는 한때 경품용 상품권과 영등위 감사를 논의하기도 했으나 어영부영 넘어갔다. 그때 바로잡았어야 할 일을 이제까지 미뤘으니, 부작용과 의혹은 커질 대로 커져,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됐다.
그렇다고 당국의 뒤늦은 호들갑을 탓하고만 있을 순 없다. 이번 사태는 정부가 앞장서 게임산업 육성 등의 미명 아래 전국을 도박장화하고, 한탕주의로 서민가계를 파탄시키고 국민의 일할 의욕을 꺾어버렸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심각성에서 다른 사건과 비교도 안 된다. 따라서 사정당국은 몇몇 업체와 관리의 위법행위를 적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도박의 산업화를 입안하고 추진한 행위나 이를 통해 검은돈을 기대했던 배후를 정조준해야 한다.
검은돈이 생기는 곳엔 ‘인간 파리떼’가 꼬이기 마련이다. 도박장만큼 그런 파리형 인간이 많이 꼬이는 곳도 없다. 도박공화국의 첫번째 공로자는 도박용으로 이용될 것이 자명한 오락기의 출시를 허용한 영등위일 것이고, 이어 골목마다 도박장을 들어서게 한 것은 문화부의 경품용 상품권 제도 도입일 것이다. 여기에 도박이 횡행하는데도 이를 적발하지 않은 사정당국, 교묘한 유권해석을 통해 적발을 방해한 영등위와 문화부는 도박의 일상화에 기여했다.
이런 엄청난 사업이 업자나 관료의 힘만으로 이뤄졌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이른바 정권 실세나 권력자의 측근 등이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다. 따라서 수사 혹은 감사를 하는 데 사정기관은 모든 가능성을 다 파헤쳐야 한다. 대통령은 예상되는 역풍을 막아줄 뿐, 방향을 제시해선 안 된다. 아무리 억울해도, ‘조카는 관련 없다’고 말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은 오로지 이번 사태의 엄정한 처리를 통해 우리 사회가 건강성과 내실을 되찾기를 기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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