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23 21:00
수정 : 2006.08.23 21:00
사설
공모 단계부터 내정설이 파다했던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이 결국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에 임명됐다. 합리적인 여론과 비판조차 통하지 않는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에 실망을 넘어 안쓰러움을 느낀다.
이번 인사는 “참여정부 보은 인사의 완결판”이라는 비판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 이재용씨는 2004년 총선에서 떨어진 뒤 환경부 장관에 임명된 인물이다. 당시에도 ‘낙선자 배려’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청와대는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영남 인물 육성론’을 들먹이며 공공연히 장관직을 선거용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올해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해 또다시 낙선하자 석 달도 안 돼 최대 공기업 이사장 자리를 내준 것이다. 이러고도 정치적 배려와 보상이 아니라고 강변한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정해진 인물을 밀어붙이다 보니 공모제의 기본과 원칙은 무시됐다. 이씨는 공모 단계부터 청와대 안팎에서 내정설이 흘러나왔다. 정권이 낙점한 인물이 있다는데 누가 들러리로 나서려 하겠는가. 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후보들이 나설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해놓고 형식적인 절차만 거쳤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청와대는 참여정부 들어 공모제를 통해 고위직 인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선전해 왔다. 그러나 얼마 전 문화부 차관 인사 논란에서 보듯, 실제로는 ‘추천’이니 ‘협의’니 하는 편법으로 인사권이 없는 자리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껍데기만 남은 공모제를 개혁의 성과로 내세우는 건 후안무치다.
공모제의 취지를 훼손하면서까지 임명할 만큼 적임자인지도 의문이다. 이씨는 장관직 경험 외에 건보 공단 업무와 직접 연관된 경력이 거의 없다. 청와대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수년간 병원을 운영한 치과 의사로서의 경험”을 거론했다. 지난해 그를 환경부 장관에 임명할 때는 “오랜 환경운동가로서의 경험”을 내세운 바 있다. 합리적 기준이라기보다는 옹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얼마 전 청와대와 여권은 대통령의 인사 방식을 둘러싸고 적잖은 갈등을 겪었다. 이번 인사는 청와대의 폐쇄적이고 온정주의적인 인사 시스템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마치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임을 과시하려는 듯한 고집스러움까지 묻어난다. 합리적 비판을 외면하는 국정 운영은 파행이 불가피하다. 이씨의 임명은 철회하는 게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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