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29 20:20
수정 : 2006.09.01 20:35
사설
아시아·태평양 지역 각국이 좀더 나은 노동환경을 만들고자 협력을 모색하는 뜻깊은 행사가 부산에서 열렸다. 4년마다 열리는 국제노동기구(ILO) 아태총회가 어제 개막돼 다음달 1일까지 계속된다. 40여 나라에서 600여 노·사·정 대표가 모였다. 우리 사회가 모처럼 국제 노동문제를 생각해볼 기회지만, 이땅의 우울한 노동현실은 국제 문제를 남의 일로 느끼게 한다. 심지어 이번 행사는 한국의 노동자 탄압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한국을 찾은 국제노동계 조사단은 경기 도청에서 막아 공무원노조 사무실 현장 방문이 좌절되는 등 조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은 그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은 세계무역기구가 요구하는 건 잘 하면서 국제노동기구와의 약속은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조사단은 곧 조사 결과를 국제노동기구와 경제협력개발기구에 보고하고 한국 감시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은 노동기구의 여러 차례에 걸친 노동정책 개선 권고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 공무원노조의 노동3권 전면 보장 등이 대표적인 사안이다. 그래서 노동권 탄압국이란 딱지가 계속 붙어다닌다.
게다가 어제는 민주노총의 이주 노동자 대표가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총회 참석이 막히는 일도 벌어졌다. 이주 노동자 보호 방안이 논의되는 회의에 민주노총 정식 대표의 참석을 막는 정부의 태도는 최소한의 융통성도 없는 옹졸함 그 자체다. 국제노동기구 행사는 세계 노동계로선 자신들의 주장을 널리 알리는 흔치 않은 기회이며, 이런 활동은 도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보장돼야 마땅하다.
이렇듯 이번 행사는 우리의 부끄러운 노동정책과 열악한 환경을 세계에 부각시키고 있다. 내실있는 정책 변화와 노동현실 개선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겉모습에만 집착하는 전시행정의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번 총회를 훌륭하게 치러낼 기회는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국내외 노동계의 비판에 귀기울이고 함께 문제를 풀겠다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이런 변화가 나타날 때 세계는 한국을 다시 볼 것이다. 그리고 정부와 노동계가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행사가 우리의 산적한 노동 현안을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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