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03 21:08
수정 : 2006.09.03 21:08
사설
한국노총와 경영계가, 정부와 민주노총을 제외한 채 노동 관련법 일부 개정안에 합의했다. 경영계가 껄끄럽게 여기는 사업장 내 복수노조 설립 허용을 유보하되 대신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의 시행 또한 유보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노동 관련 법을 종합적으로 재정비하는 이른바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로드맵) 협상이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 빠졌다.
복수노조 허용은 경영계로선 가장 부담스런 사안이다. 협조적인 노조를 둔 기업들은 독자적인 새 노조 출현을 크게 걱정하고 있다. 이번 합의는 이런 부담을 전임자 임금과 맞바꾼 꼴이다. 한국노총으로서도 큰 손해가 없어 보인다. 전임자 임금이 지급되지 않으면 노동계 전반에 타격이 예상되지만, 상대적으로 소규모 노조가 많은 한국노총이 민주노총보다 더 불리하다. 복수노조 허용 문제는 좀더 미묘하다. 협조적인 노조가 있는 사업장들은 복수노조가 부담스럽겠지만, 노조 활동이 활발한 기업은 별다른 변화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도 생각이나 처지가 조금씩 다르다. 이번 합의를 두고 민주노총은 “복수노조 허용이 민주노조의 기본 원칙”이라며 유예 반대 의사를 분명히했다.
협상 당사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합의를 끌어내려는 걸 탓할 건 아니지만, 두 노총의 개별 행보는 장기적으로 노동계 전반에 이로울 게 없다. 노동법 같은 사안을 다루는 데는 노동계의 단결이 가장 큰 힘이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의 이번 행동은 소탐대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여러차례 미뤄온 복수노조 허용을 더 미뤄서는 안 된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따질 것 없이 노동계가 비정규직 등 다양한 노동자 계층의 이해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고 기득권층화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복수노조 유예는 이런 기득권층화를 심화시킬 여지가 높다. 노조전임자 임금 또한 원칙적으로는 기업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법으로 일률적으로 규제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노조의 재정 독립을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당장 금지할 경우 상당수의 노조가 무너질 우려가 높다. 임금 지급 금지가 기업에 무조건 좋기만한 것도 아니다. 꽤 많은 기업이 재정 지원을 통해 노조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상대의 존립 기반을 인정하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게 노사관계 불안을 피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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