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05 18:18
수정 : 2006.09.05 18:18
사설
한국씨름연맹이 천하장사 출신으로 민속씨름의 상징적 존재인 이만기 인제대 교수를 영구제명했다. 이씨가 전·현직 총재와 연맹을 근거없이 비방하고 유사 단체를 만드는 등 씨름인의 품위를 훼손했다는 게 주된 징계 사유다. 그러나 이씨는 “씨름의 장래를 위해 올바른 비판을 한 것일 뿐”이라며 제명 조처에 반발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씨름계 전체가 한데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책임론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계속해서 불거지는 건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몰락하는 집안에서 싸움만 잦은 꼴이니 국민들이 어찌 보겠는가.
지금 민속씨름은 말 그대로 난파 직전이다. 프로 씨름단은 단 한 곳밖에 남지 않았고, 천하장사 출신 스타급 선수들은 줄줄이 모래판을 떠나고 있다. 전국대회 규모와 횟수는 확 줄어 공중파 방송 중계조차 외면당하는 지경이다. 이미 몇 해 전부터 기업들은 잇따라 프로 씨름단을 포기했고, 갈곳 없는 선수들은 단식으로 대책을 호소했다. 불과 10여년 전, 걸출한 스타를 보기 위해 씨름 경기장과 텔레비전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던 때와 비교하면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다.
그러나 위기 타개의 구심점이 돼야 할 연맹은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씨름 경기 방식을 개선하는 등 국민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당장 대회를 열어 방송 중계권료 수입을 유지하는 데만 매달렸다. 안팎에서 씨름 행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건 당연하다.
진정으로 민족씨름의 부흥을 꾀한다면 여러 대안과 충고에 한껏 귀를 열고 대책을 찾는 게 순리다. 그러나 연맹은 평소 씨름 행정에 비판적 목소리를 낸 이씨를 ‘연맹 흔들기’의 주범으로 몰아 중징계했다. 다분히 감정적이고 옹졸한 처사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연맹이 한편으론 아마추어 선수들과 합쳐 대회를 여는 등 나름의 자구 노력을 꾀하고 있는 터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는 꼴이다.
정부는 얼마 전 씨름을 태권도와 함께 ‘100대 민족상징문화’의 하나로 지정했다. 민족의 상징물이 고사하는 현실을 방관하는 문화관광부나, 시청률이 낮고 관중이 없다고 방송 중계를 끊겠다는 공영방송 역시 각성할 대목이 적지 않다. 국민들의 사랑을 잃지 않는 일본 씨름 스모에서 한 수 배워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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